|
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40)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향교 입니다.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교동 26-3)번지에 있습니다.
전주향교는 조선시대 국립대학으로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는 풍남동(경기전 북편)에 있었다가 1603년(선조 36) 좌묘우사(左廟右社), 즉 객사에서 남면하여 좌측에 문묘(공자의 사당), 우측에 사직단(社稷壇)을 배치하는 옛 법도에 어긋난다하여부성 밖 동편인 지금의 자리로 다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1654년(효종 5)·1832년(순조 32)·1879년(고종 16)·1904년에 중수하였고, 1922년에 명륜당을 보수하였습니다. |
|
조선 후기의 경내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각 10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신문(神門), 외문(外門), 만화루(萬化樓), 5칸의 명륜당, 각 6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3칸의 계성사(啓聖祠), 신문(神門), 입덕문(入德門), 4칸의 사마재(司馬齋), 6칸의 양사재(養士齋), 2칸의 책판고(冊板庫), 직원실, 제기고(祭器庫), 수복실 등 총 99칸인 대규모의 건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때의 향교는 전라도 53관의 수도향교(首都鄕校)라 칭하였습니다. 그 뒤 만화루는 1886년(고종 23)에 홍수로 수몰되었고, 책판고는 관찰사 조한국(趙翰國)이 관고(官庫) 소유 책판을 전주향교로 이장하여 책판고 내에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1920년의 홍수와 1950년 6·25전쟁으로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만화루의 어원은' 공자지도 만물화생(孔子之道萬物化生)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인데, 뜻은 공자님의 도로 만물이 교화된다는 말이라 합니다. 만화루의 건축되는 유래는, 왕비나 정승 등 높은 사람이 출생한 곳에 세워졌으나, 본 건물은 전주향교의 정문에 세워진 2층 누각으로, 유생들의 여름철 강학과 향시장으로 사용되여 왔다고 합니다. 건물은 전면3칸 측면2칸 2층이며, 건평은 73,4㎡로, 중층 팔작지붕에 이익공 구조이며, 2층은 우물마루로 깔리고 계자난간으로 둘러 있습니다. |
|
전주향교의 대성전은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5성(五聖)·10철(十哲)·송조 6현(宋朝六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또 동무·서무에는 유약(有若)·복불제(宓不齊)·복승(伏勝)·동중서(董仲舒)·한유(韓愈)·이통(李侗)과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
|
전주향교는 1950년 4월 13일에, 초급대학인 명륜대학을 설립하여, 법학과와 국어한문과를 두었고, 1953년도에, 전북종합대학교로 격승, 인가를 받아 교육시키다가, 학생들이 너무 몰려와, 향교 건물로써는 학생들을 수용할 수 없어서, 1955년에 향교에서 교육을 청산하고, 현재의 덕진 캠퍼스를 지어, 이전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9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한옥마을에 있는 전주향교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 장소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시민교육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기능이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