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인권제도 운영에 대한 도전과 과제
정 영 선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Ⅰ. 인권제도의 발전과 인권의 지역화
2023년 10월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지방자치단체 243개 중 123 곳에서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한 대부분의 지방에서 여러 유형의 인권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권위원회 또는 인권 전담 부서 등 인권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는 지방정부에서는 인권실태조사, 인권기본계획 수립, 인권영향평가, 인권지표 마련 등 인권정책을 수행하고 있고, 인권교육 및 홍보, 인권 관련 다양한 행사 개최 등을 통하여 각 지역에 인권문화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지방정부에서 인권의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긍정의 목소리와 더불어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민주화 이후 인권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확대되면서 인권의 본래 성격인 저항성을 탈색시키는 것은 아니냐 하는 지적이다. 현존 권력체제 내에서 ‘덜 위협적인’ 방식이면서 권력에 드러내어 저항하지 않고 권력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권리를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결국 제도화의 숨은 의도라는 것이다. 인권이 제도화되면서 인권은 주어진 체제 안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된 것만을 주장할 수 있는 자격으로 변질되었고, 권리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절차적 논의로 그 범위가 협소해지고 말았다는 것이 인권제도화에 대한 비판의 핵심 중 하나이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지방정부의 인권 제도화 과정은 기존의 인권운동이 취해왔던 시민사회 중심의 ‘운동의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도 비판의 일부를 차지한다.
사실 그 동안 인권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장은 전적으로 국가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오랜 세월 동안 자리해 왔다. 그러다가 일상생활 속에서 인권 관련 쟁점과 이슈가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인권보호가 필요한 공간이 주민들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지역에 있음이 자각되면서,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주민생활과 좀 더 밀착된 수준의 인권 보호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인권의 지역화’ 또는 ‘지역의 인권화’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즉, 인권 사무는 중앙정부가 위임한 국가 사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방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할 수 있는 지자체 고유사무이기도 하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인권 구제나 정책을 더욱 효과적으로 시행하고,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을 이중적으로 두텁게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UN 인권이사회는 총 6차례에 걸쳐 지방정부와 인권에 관한 결의안 채택을 통해 지역 차원의 인권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인권 증진을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도시행정에서 시민참여보장 및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취약 집단에 대한 권리 보호 및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즉 인권도시의 주요 정책 프로그램으로 시민의 생존권, 주거권, 도시의 민주적 관리, 이주민 보호, 사회적 소수자·약자 차별철폐, 환경보호 등이 포함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도시에 대한 권리’(rights to city) 논의와 함께 ‘인권에 기반을 둔 지방행정’(rights-based local administration)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지방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것이다.
Ⅱ. 지방 인권제도 운영에 대한 평가틀과 의의
지방정부가 수행하는 인권 업무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는 적절한 인권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그 체제하에서 실효성 있는 인권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여기서 인권제도는 인권 보장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적절한 사회적 장치, 즉 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인권정책의 주체인 국가나 지방정부가 만들어 낸 법규범, 조직 구성, 정책 입안, 문화 확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이러한 제도들을 형식적·내용적으로 구축해 가는 과정을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방정부의 인권 제도화는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민 인권의 보장을 위한 조례와 규칙 등 법규범 정비, 법규범을 이행하기 위한 각종 인권기구 설립, 인권기본계획 수립과 인권영향평가 및 실태조사 등 주민을 위한 인권정책 수행, 그리고 인권교육과 홍보 등 인권문화 확산을 위한 각종 제도를 만들어 가며 이를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각각의 과정 및 단계가 발전함에 따라 다른 영역에도 긍정적·생산적 영향을 비치는 선순환적 관계가 설정된다.
<그림 1> 지방정부 인권 제도화 과정 및 선순환 관계
지방정부 인권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10여 년이 흐르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제도화의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였는지에 대한 평가를 해보고 동시에 발전적 대안을 강구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지방정부의 인권제도 구축 과정에 있어서, 인권기본조례 제정이나 인권 관련 기구 설치·확장 등 외형적·양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가 실효성을 갖추고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는지 여부를 진단하고, 현재 봉착해 있는 도전과제나 문제점은 무엇이며, 향후 발전을 위해서 재고해야 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진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방 인권제도의 발전상을 되돌아보면, 50%를 상회하는 지방정부에서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하는 등 인권제도의 양적 성장 측면에서는 상당 부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 인권제도가 실효성을 갖추고 질적 성장도 병행되었는지에 대한 평가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중앙정부가 공간적 한계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말미암아 미흡했던 지역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지방정부 인권정책마저 실효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경우, 양적 성장은 결국 형식만 요란하게 갖추는 ‘알리바이’성 전시 효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방정부 인권제도에는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과제가 산적해 있을 터인데, 여기서는 <그림 1>에서 제시한 지방정부 인권제도의 발전 과정과 선순환 관계를 기본으로 하여 인권규범 및 인권기구의 정비, 인권정책 수행의 내실화, 그리고 인권문화 확산을 분석 범주로 하여 각 항목별로 현재 직면해 있는 도전과 향후 해결해 나갈 과제를 중심으로 분석해 본다.
1) 일반적으로 ‘인권조례’라 함은 장애인, 여성, 노인, 외국인, 다문화가족, 청소년 등 특정 사회적 약자 나 특정 분야(예, 스포츠 분야, 건설 또는 택배 노동자 등)를 대상으로 이들의 권리 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조례를 통칭한다. 다만 이 글에서 ‘인권기본조례’라 함은 특정 분야 대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 인권기본조례를 지칭하고 있다.
2) 이처럼 ‘관 주도화’를 대표하는 사례 중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기본조례 표준안> 제정 권고이다. 2009년부터 광주광역시를 필두로 시작되었던 인권기본조례 제정 움직임은 한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다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4월에 <인권기본조례 표준안>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각 지방정부에게 조례 제정을 권고하기 시작하면서 조례 제정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문제는 <인권기본조례 표준안>에는 인권영향평가 조항이나 인권기구 ‘조사’ 권한도 없는 등 제한적 기능만 부여하고 있어서, 이를 차용하는 지방정부에게 ‘껍데기’에 불과한 인권기구 설립 등의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3) UN 인권이사회 결의안은 다음을 참조. Human Rights Council resolutions on local government and human rights: 24/2 of 26 September 2013, 27/4 of 25 September 2014, 33/8 of 29 September 2016 and 39/7 of 27 September 2018: 45/7 of 6 October 2020 and 51/12 of 6 October 2022. 이외에도 2023년 8월 28일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주관으로 개최된 ‘지방 정부의 모든 업무에 인권을 접목할 수 있는 역량 강화 전문가 회의’ (Expert meeting on enhancing capacity-building for local governments to incorporate human rights into all their work) 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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