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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41)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완산칠봉입니다.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매곡로 35-29 있습니다.
완산칠봉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東完山洞)에 있는 공원으로 완산공원이라 부르기도 하나 보통 완산칠봉이라 부릅니다. 완산칠봉은 동학농민운동 때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로, 지금은 전나무 ·삼나무 ·측백 등 숲이 우거진 시민공원으로 가꾸어져 있습니다. 정상에는 전망대인 팔각정이 세워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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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칠봉은 이름처럼 7개의 봉우리가 아닌 실제로는 13개의 봉우리로 가장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평화동 방향으로 뻗은 외칠봉과 완산동 방향으로 뻗은 내칠봉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외칠봉은 장군(將軍)봉, 검무(劍舞)봉, 선인(仙人)봉, 모란(仙人)봉, 금사(錦絲)봉, 매화(梅花)봉, 도화(桃花)봉이며, 내칠봉은 매화(梅花)봉, 탄금(彈琴)봉, 장군(將軍)봉, 옥녀(玉女)봉, 무학(舞鶴)봉, 백운(白雲)봉, 용두(龍頭)봉입니다. 완산칠봉의 높이는 매화봉(115m) - 탄금봉(169m) - 장군봉/곤지산(184m) - 옥녀봉(161m) - 검무봉- 선인봉(164m) - 모란봉(132m) - 금사봉(122m) - 매화봉(103m) - 도화봉(86m) - 금송아지바위 - 무학봉(150m) - 백운봉(139m) -용두봉입니다. 장군봉은 곤지산으로, 검무봉은 완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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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칠봉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용머리고개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용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용머리고개는 전주에 입성한 농민군, 농민군을 뒤쫓아온 관군 모두가 넘어야 했던 전주의 관문과도 같은 곳입니다. 농민군이 용머리고개를 넘어 전주성으로 들이치던 당시의 상황을 오지영의 <동학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무장, 영광 등지로부터 사잇길로 사방으로 흩어져 오던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함께 섞여 미리 약속이 정하여 있던 이날에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미 다 시장 속에 들어왔었다. 때가 오시(오전 11시 - 오후 1시)쯤 되자 장터 건너편 용머리 고개에서 일성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 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헤어져 달아났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편 고함을 지르며 한편 총질을 하였다. 서문에서 파수 보는 병정들은 어찌 된 까닭인지를 몰라 엎어지며 자빠지며 도망질을 치고 말았다. 삽시간에 성안에도 모두 동학군의 소리요 성밖에도 동학군의 소리다. 이때 전봉준 대장은 천천히 대군을 거느리고 서문으로 들어와 좌(座)를 선화당(감사의 집무실)에 정하니 어시호 전주성은 이미 함락이 되었다>
농민군이 전주성에 무혈입성하자 뒤따라온 경군은 용머리고개와 완산칠봉에 진을 치고 전주성을 차지한 농민군들에게 싸움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이날 이후 농민군과 경군은 용머리고개와 완산칠봉 이짝 저짝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벌였는데 딱히 누가 누구를 압도하진 못했으나 농민군 측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합니다.
<하루 차이로 농민군을 뒤쫓아온 경군은 용머리고개를 넘어 완산에 진을 쳤다. 초토사 홍계훈은 1,500여 군사를 건지산, 기린봉, 오목대, 황학대 등에 배치하여 전주성을 포위했다. 본영은 용머리고개 남쪽 산 중턱에 설치했다 하니 장군봉보다 좀 더 전주성에 근접한 투구봉 근처이다. 전주성을 포위한 경군의 선제공격으로 전투가 개시되었다. 전주성을 사이에 둔 공방전, '완산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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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계훈)은 주의 남쪽에 있는 완산 위에 결진하고 대포 3발을 시험 삼아 성내에 쏘았을 때 적도들이 서문 양문을 열고 수천 명이 일시에 뛰쳐나와 날뛰면서 달려왔습니다. 남문으로 나온 적들은 백포 장막으로 몸을 가리고 남쪽으로 올라오고 서문으로 나온 적은 날뛰면서 산의 서쪽으로 올라오며 성내에 있는 적들은 성루 위에 한 줄로 서서 일제히 아군을 향해 끊임없이 포를 쏘아 탄환이 비 오듯 하였습니다.> -양호초토등록<동학란 기록>
장군봉에서 전주성 방향 산길을 잡아 내려가면, 장군봉과 탄금봉 사이 능선 안부에 '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기념탑 왼쪽 '보국안민'의 '보'자가 잘못 새겨져 있습니다. 保가 아니라 輔가 맞다. 농민군들은 '나라를 지켜'서가 아니라 '나라를 바로잡아'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완산칠봉 옆 투구봉에는 전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과거 일제 감점기 때부터 있던 상수도 물탱크를 철거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전주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완산칠봉은 과거의 동학농민혁명군과 경군의 전투지역이었으며, 현재 전주의 처지를 지켜보는 인권역사문화 유적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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