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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50)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익산 삼세 오충렬 유적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68번지에 있습니다.
삼세 오충렬 유적은 삼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해주 오씨 다섯 충신의 무덤과 이들을 기리는 사당인 충렬사가 있는 곳입니다. 오응정과 그의 아들 욱, 직, 동량, 직의 아들 방언 등 다섯 충신이 그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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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는 충효의 업적을 이룬 유적지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이 전라도에서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중 익산의 삼세 오충렬 유적지는 삼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싸다 순국한 인물과 그 집안이 있습니다. 해주오씨 (海州吳氏)의 5명이 삼세 오충이라고 부릅니다. 본래는 오응정과 오욱·오직 형제, 그리고 오방언 등 4명을 배향하여 4충사(四忠祠)라고 불렀는데, 근래에 오동량을 추향(追享)함에 따라 5충사(五忠祠)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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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정은 용안 출신으로 정유재란 때 전라도방어사였습니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충무위부사정(忠武衛副司正)으로 종군하던 장자 오욱과 함께 남원성에 들어가서, 당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셋째아들 오동량과 함께 합류하여 싸웠습니다. 하지만 남원성이 함락당하자 두 아들과 함께 세 부자가 화약고를 터뜨려 순절하였습니다.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가 그의 행장(行狀)을 지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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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은 광해군 때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後金)을 공격하기 위해 편성된 조명 연합군의 우영천총(右營千總)이 되어 1619년 압록강 건너 심하(深河)에서 후금군과 고전하다가 우영장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전사하였습니다.
오방언은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선진관을 지냈고,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 도총부도사로 있었습니다.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자청하여 출전하여 싸우던 중에 왕이 청(淸)에 항복하자 한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습니다. 용안의 충렬사는 1681년(숙종 7)에 세워졌고, 1982년 8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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