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이를 캐며 |
정관성
겨우내 냉이와 도라지를 캐다 먹었습니다. 도라지는 작년에 심은 1년생 뿌리가 제법 굵어지고 잔뿌리가 많아졌고, 일부는 지난해 계속된 비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부 다 굵어진 도라지가 껍질만 남고 썩은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든 냉이와 도라지에 더해 더덕과 달래도 일부 캐 먹으며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이는 야채를 사다 먹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묻어뒀던 무도 조금씩 빼먹는 맛이 그만입니다. 냉이는 밭을 갈지 않으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들깨와 콩을 베어낸 자리에 작은 풀들이 보이던 게 지난해 10월 말이었습니다. 들깨와 콩이 제대로 자라지 않은 곳에선 많은 풀이 있었지만, 우거졌던 아래에서도 작은 풀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그 풀 중에 냉이가 섞여 있을 것이란 기대는 별로 없었습니다.
작년 봄까지 냉이는 주변 텃밭이나 밭두둑 여기저기서 가끔씩 캐다 먹었습니다. 손질도 어렵고, 흙을 씻어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노느니 장독 깬다는 심정으로 냉이를 캐다가 손질하다보면 하루 종일 일거리 이어졌습니다. 애들 엄마는 어려서 냉이를 별로 먹어보지 못해서 맛을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11월 말 어느 날, 주말에 심심하니 밭에나 가자고 해서 부부가 같이 밭에 나갔습니다. 가만 보니 냉이가 상당히 자라있었습니다. 서서 보면 안 보이는 것들이 쪼그리고 앉으면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삽과 약초괭이로 냉이를 캐기 시작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캤습니다. 워낙 여리고 작아서 양이 잘 채워지지 않던 시간이었습니다. 겨울로 가는 날씨에 모처럼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냉이를 캐기에 딱 좋았습니다. 예전에 혼자서 다듬던 것을 이번에는 부부가 거실에 신문지 깔아 놓고 다듬으니 그 또한 훨씬 수월했습니다. 물에 헹구는 것은 제가 맡았는데, 정말이지 끝도 없이 설탕가루 크기의 모래가 나왔습니다. 세탁기 같은 게 있어서 휘휘 저으며 씻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걸로 일부는 나물을 하고, 일부는 된장국을 끓였는데 가족 모두가 맛있다고 잘 먹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비나 눈이 오지 않는 주말엔 밭에 나가서 냉이를 캤습니다. 2월에 접어들면서 냉이 뿌리는 어느새 굵어져서 큰 것은 대젓가락 크기로 굵어졌고, 상당수는 벌써 꽃망울을 가득 안고 있었습니다. 캐고 씻고 다듬는 기술도 늘어 밭에서 시든 잎과 거친 흙은 거의 다 털어서 가져가니 정리도 좀 나아졌습니다. 물론 냉이를 캐는 속도와 양도 늘었지요. 설 연휴에는 장모님과 동서한테도 냉이를 한 보따리 안겨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직장 동료가 자기도 냉이를 좀 주라고 해서 밭 주소를 찍어드릴 테니 가서 맘껏 뽑아 가시라고 했습니다. 수월해졌지만 그냥 되는 일은 아닙니다.
냉이를 캐며 부부는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도 하고, 뉴스에서 나온 이야기도 하고, 어릴 때 추억도 이야기 합니다. 가끔은 제가 도라지를 캐고, 아내는 냉이를 캐며 혼자 몰입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도라지는 돈 주고 종근을 사다 심은 탓에 귀하게 여기고, 냉이는 저절로 밭에 지천으로 깔려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곤 합니다.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깨끗이 씻어 정리된 냉이와 도라지가 집으로 바로바로 오는 시절입니다. 가끔 점심도 거르고, 오금이 저려서 뻐근하고, 허리와 목이 아파서 노곤노곤 하지만 도라지와 냉이를 캐면서 한 겨울 잘 지나왔고, 또 새로운 봄을 맞이합니다.
냉이는 심지 않았고, 앞으로도 씨를 받아 뿌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불쑥 찾아오는 시절이 또 있을 겁니다. 지역의 소멸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구가 줄고, 경제가 침체되고, 교육과 문화가 걱정된다고 합니다. 현상을 보면 그게 맞습니다. 그래도 냉이는 여전히 가을부터 봄까지 어딘가에서 날 겁니다. 사람들이 관리하지 않아도 나고 자라고 꽃피우고 씨를 떨구는 냉이가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지역의 소멸을 걱정하는 일은 인간의 삶과 역사에서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누군가 지역이 걱정되고, 농촌이 걱정되고, 앞으로의 지구가 걱정된다고 생각되면, 햇살 좋은 날 하루 냉이를 캐러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조금 있으면 올라올 쑥을 뜯으러 갈 것을 권합니다. 냉이와 쑥과 도라지와 이를 바라보는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뿐입니다. 더 뭔가 되돌릴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한 쪽에 꽂혀 열중하다가 뭔가를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