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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기형도를... |
정관성
1989년 3월 7일은 기형도 시인의 사망일입니다. 제가 대학에 떨어지고 막 재수를 시작하여 긴장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번화한 관광지로 요란하기 짝이 없는 한옥마을이지만, 그 시절 한옥마을은 조용하고 음침한 분위기마저 돌았습니다. 가끔 분뇨차가 와서 “똥 퍼~~”라고 외치면 수업을 받던 친구들 모두 웃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갑자기 음침하던 골목에 웃음소리가 터지는 걸로 고요와 평온이 깨지곤 했습니다. 시대도 음험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할복 투신하여 세상을 뒤로한 조성만 열사가 있었고, 밧줄에 꽁꽁 묶인 흔적이 남아있는 부패한 시신으로 호수에서 떠오른 이철규 열사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공안 통치는 민중의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87년의 승리의 결실은 고스란히 몇몇 명망가의 정치적 타협과 이권으로 쏠리고 말았던 시절의 암울함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 했습니다. 촛불과 탄핵으로 맞이했던 잠깐의 승리, 정치적 무능력과 오판이 겹친 결과로 비롯된 윤석열 정부 태동과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분뇨차가 와서 한 번 외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물을 수거하고 싶다고. 기형도는 시대를 아파했습니다. 여린 마음으로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기 참 힘들었을 겁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전문) 이 시를 보면 시대의 공포와 낡은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적 고립이 느껴집니다. 사회적 고립과 절망을 피해 문을 닫고 빈집에 남듯 그는 종로의 허름한 심야영화관에서 29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시인 기형도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여행을 한 곳이 전주라는 사실을 아는 이 많지 않습니다. 기행문 <짧은 여행의 기록>에 기형도가 전주에 온 내용이 나옵니다. “전주에는 6시에 내렸다. 수박 한덩어리와 복숭아, 그리고 담배 몇 갑을 사고 황방산 서고사를 향해 택시를 탔다. 택시로 20분 못가 길모퉁이에서 소매 없이 헐렁한 셔츠에 밀짚모자를 쓴 강선생이 튀어나왔고 나도 택시에서 내렸다.” 여기서 강선생은 강석경 소설가이고,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였던 기형도는 강석경이 연재 중이던 소설 원고를 받으러 갔던 것입니다. 서고사는 황방산에 있고, 지금의 만성지구와 혁신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습니다. 서고사에서 기형도는 문학을 하는 학생과 소설가 등을 만나 저녁에 밤하늘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시내로 이동해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도 갔다가 터미널로 이동합니다. 지금도 <빈센트 반 고호>라는 커피숍에선 기형도와이 인연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기형도의 짧은 여행에는 전주, 광주 망월동 묘역, 대구 등이 있습니다. 광주 망월동 묘역에선 우연히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대구에서 만난 장정일은 “소년 장정일”이라 할 정도로 기특하게 문학적 소질이 많은 청년으로 봤나봅니다.
80년대를 겪은 세대들에게 기형도는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를 읽고 회한을 씹었고, 기형도 시집을 친구들에게 선물했고, 기형도의 시를 거론하며 시대의 우울을 기억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불쑥 기형도의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어느새 80년대 후반의 우울함이 연상되곤 합니다.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기형도의 짧은 여행, 전주에서의 행적을 따라가며 회상하고 문학적 경험을 공유하는 여행을 기획하는 것입니다. 당일치기로 서울에서 KTX를 타고 내려와서 서고사부터 들러, 기형도의 산문을 몇 구절 서로 돌아가면서 낭독하고 기형도의 시선으로 혁신도시와 만성지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다음은 시내로 나가서 점심을 백반으로 하고, 빈센트 반 고호에 들러 커피도 한 잔 한 후, 고속터미널에 갑니다. 기형도는 전주고속터미널에서도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짧지만 컨셉을 잘 잡은 여행을 기획하여, 7~8명 정도의 소규모 여행을 꾸린다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좀 길게 잡으면 광주 망월동 묘역도 방문하는 코스도 좋을 것입니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입니다. 그 해 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기형도의 고뇌를 생각합니다. 어떤 말로도 이해하기 힘든 억지와 무지가 판치는 세상 탓이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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