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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은 태극기 높이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애국심은 태극기 높이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광화문 태극기 게양대 설치를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가 오는 2026년 광화문 광장에 100m 높이 게양대와 초대형 태극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6·25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국가 상징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입니다. 저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의 입장에서, 서울시가 이를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낡은 국수주의적 방식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려? 저는 서울시의 이번 발표가 먼저 애국심을 고양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그 실현 방법이 현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 극복한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방식을 현대적으로 포장해서 구현하려고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낡은 국수주의적 방식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민족에 대한 사랑을 견지하면서도 폐쇄적 민족주의를 넘어 열린 민족주의, 혹은 나아가 열린 세계시민적 인식을 갖고, 이를 미래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강한 애국심과 건강하지 못한 애국심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애국심은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애국심도 때론 있기 때문입니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리한 자부심은 다른 나라에 대한 배타적인 정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쟁과 빈곤의 상처를 딛고 빠르게 성장한 사회는, 과거의 상처에 따른 반작용 혹은 보상 심리로 지나친 도취감과 우월감에 빠져 결국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세계시민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애국심이라면, 건강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국가의 힘에 도취된 국수주의는 우리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약자의 희생에 눈을 감게 할 때가 많습니다. 약자들을 희생해서라도, 국가의 힘을 더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약자의 희생에 무감각해지는 순간, 자발적인 애국심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흔들리게 됩니다. 국수주의가 오히려 애국심을 망치는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이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군대가 튼튼하고 식량이 넉넉해도, 신뢰가 흔들리면 국가 안보가 유지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진정한 국가 안보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태극기를 평소보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게양한다고 하여, 그 신뢰가 더 두터워진다고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낡은 국수주의로 건강한 안보의식도 키워지지 않습니다 6·25 전쟁 발발 이후 74년 동안 대한민국은 폐허 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세계시민의 사랑을 받는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했습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눈부신 성취입니다. 6·25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취입니다.
냉전 종식 이후 하나의 시장으로 묶였던 세계가 다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총성이 울립니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를 막는 유형, 무형의 장벽도 세워지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는 대한민국은, 적대적 진영 논리를 넘어선 폭넓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어낸 6·25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그래서 더욱 절실합니다. 전쟁의 비극을 생생히 기억해야 평화를 제대로 지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극기를 까마득히 높은 곳에 게양한다고 해서, 우리가 전쟁의 비극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중요성을 잊고 지낸다면, 그것이 태극기를 지금의 높이에 게양했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낡은 국수주의에 기대서는 건강한 안보의식을 키울 수 없습니다.
애국심은 태극기의 높이에 비례하여 커지지 않습니다. 애국심은 억지로 주입할 수 없습니다. 강요된 애국심은, 전쟁의 위기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건강한 애국심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발현된 결과물입니다. 오히려 약자여도, 소수자여도, 우리 사회 공동체가 외면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확대되어 갈 때, 건강한 애국심이 커집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위험한 일을 하다 다치거나 숨진 군인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산업 현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에서 더 잦은 산업재해를 겪곤 합니다. 이렇게 희생되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가장 높은 존경을 드려야 합니다. 군대 계급이 낮다고 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에서 자랐다고 해서,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다 희생한 분들에 대한 존경의 높이가 달라서는 안 됩니다.
소중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헌신하는 애국심은, 대한민국이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의 희생도 가장 숭고하게 기억하는 사회라는 믿음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런 믿음이 태극기 게양대의 높이에 비례할 리는 없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은, 외부에서 주입하거나 강요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애국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입하거나 강요할 수 없습니다. 차별 없는 공동체 경험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자부심이 바탕에 있을 때, 건강한 애국심도 생겨납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일대를 워싱턴DC 내셔널몰의 ‘워싱턴 모뉴먼트’,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에투알 개선문’처럼 국가 상징 공간으로 조성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저는 애국심을 상징하거나 고취하는 기념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시대의 건강한 애국심, 그리고 선진국이 된 국민들의 자부심에 부응하는 현대화된 기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미국, 프랑스 등이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는 근간이 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선 차별 없이 가장 높은 존경을 드렸던 역사와 문화를 품격있게 만들어 가려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애국심을 가지고 어떻게 열린 세계시민으로 나아갈 것인가 서울시교육청은 세계시민형 민주시민교육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난 10여년간 교육의 핵심적인 방향은 민주시민교육이었고, 그것은 우리 미래세대들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 민주시민이 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세계시민형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피부색과 언어, 문화가 다른 지구촌 시민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시민으로 자라야 합니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대에 사회로 나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이는 더욱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지구촌 시민과 국경을 넘어 공감하고 협력하는 역량을 기르지 못한다면, 인구 감소 시대의 대한민국은 지금과 같은 경제, 학문, 문화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 지금, 광화문 한복판에 거대한 태극기 게양대를 만드는 사업을 서울시가 추진한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결정이 아니며 오히려 낡은 국수주의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화와 언어가 낯선 지구촌 이웃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 앞에서 주눅 들지도 않는 세계시민은 소외와 배제, 차별이 없는 교육 공동체에 대한 건강한 자부심 위에서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언어가 친숙한 공동체 안에서조차 차별 없는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낯선 문화에서 성장한 이들과 수평적이고 평화로운 소통을 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관세장벽으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블록화 경향과 지정학적 갈등은 분명히 한국 사회의 미래에 드리운 불안한 그림자입니다. 미래 시민으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불안한 그림자를 걷어낼 책무가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그 책무를 기꺼이 감당하는 건강한 애국심이 절실합니다. 국수주의와 다른, 건강한 애국심은 약자와 소수자가 차별 없이 존중받는 공존의 공동체를 다수 시민이 경험할 때만 생겨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존의 교육으로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힘을 쏟겠습니다.
거대한 태극기 게양대를 쌓는 노력 대신, 건강한 자부심이 자연스레 샘솟는 공존의 공동체로 향하는 길에 서울시와 정치권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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