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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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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진안 영산사, 영계서원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원강정1길 54-6번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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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의 고장 진안에는 영산사, 영계서원, 완월루가 있습니다.
영산사(靈山祠)는 1862년(철종 13)에 창건 후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24년에 설단 제향하였고 1975년에 중건하였습니다.
영산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 맞배지붕이며 경명문(景明門)이라는 출입문이 있습니다.
영산사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도은 선생의 묘와 1924년에 세운 비가 있으며 입구 왼쪽에는 1979년에 후손들이 세운 신도비가 있습니다.
영산사에는 도은 전문식(都隱 全文軾), 아들인 양헌 전극례(良軒 全克禮), 손자인 송당 전자온(松堂 全子溫), 죽헌 전자양(竹軒 全子讓)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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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전문식(都隱 全文軾)은 고려 우왕 11년에 평안백, 조선에서 경상백, 지의정부사를 지냈습니다.
양헌 전극례(良軒 全克禮)는 호조판서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이르렀고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고 낙향하였습니다.
송당 전자온(松堂 全子溫 ~1457), 죽헌 전자양(竹軒 全子讓) 형제는 함께 문과에 급제했다고 하나 확인은 되지 않는다고 하며, 단종이 영월에서 승하하자 형제가 몸을 던져 순절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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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 서원(靈溪書院)은 1649년(인조 27)에 세워졌는데 서원철폐령으로 1867년(고종 6)에 철폐되었다가 1870년에 유허비를 세우고,
1900년에 다시 설단(設壇) 되었다가 1948년에 복원되었습니다. 경내 건물은 외삼문인 명덕문(明德門)이 있고 사당인 영계사(靈溪祠)가 있습니다.
영계서원에는 규암 전계종(葵菴 全繼宗), 충경공 이정란(忠景公 李延鸞), 쌍첨 이인현(雙尖 李仁賢), 만육당 최양(晩六堂 崔瀁)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규암 전계종(葵菴 全繼宗 1516~1592)은 조선 후기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출신 의병입니다. 1583년(선조 16)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 후 여진족 침략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난이 평정되어 마을에 암자를 짓고 살았습니다.
충경공 이정란(忠景公 李延鸞 1529~1600)은 조선 후기에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 후 성균관전적, 해미 현감, 양재찰방, 개성 부도사를 역임하였습니다.
쌍첨 이인현(雙尖 李仁賢)은 조선 후기 음직(蔭職)으로 시작하여 문화 현감(文化縣監)을 역임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습니다.
만육당 최양(晩六堂 崔瀁 1351~1424)의 시호는 충익(忠翼)입니다. 외삼촌 정몽주(鄭夢周)에게 수학하였고 예문관 직제학, 대사간, 문하찬성사 등의 벼슬을 했습니다.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태조가 하사하는 관직을 거절하였습니다. 저서로 “만륙일고”가 있으며 전주 서산사(西山祠)에 제향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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