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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대하여... |
백승종 (역사학자)
문장에 대하여 ...
문 1: 명문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알다시피 조선 시대에는 뛰어난 문장가들이 많았다. 사육신 박팽년부터 시작해, 성종 때 성리학의 영수 김종직, 17세기 개성 만점의 지식인 허균,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과 김정희 등 누구나 이름을 다 아는 문장가들이 대대로 끊이지 않았다. 그들 문장가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보면 어떠할까. 첫째, 그들의 글에는 보편적 가치가 담겨있었다. 사랑과 우정, 진리에 대한 갈망 같은 것 말이다. 문장가들은 물질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 가치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 것이었다. 둘째, 명문장가는 개성적 문체의 소유자이기도 하였다. 누구는 간결한 문체를 선호하였고, 누구는 익살스럽거나 풍부한 감정 묘사를 좋아하였다. 그러한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명문장가라면 모두가 개성이 뚜렷한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셋째, 그들이 쓴 문장을 읽으면 글쓴이의 진정성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냥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내적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이라야 명문이 되는 법이 아닐까.
문 2: 문장가는 역사적 위인일까? 역사상의 문장가들은 박식하였다. 문학, 철학, 역사에 해박한 인물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이덕무를 손꼽고 싶다. 그는 평생 책읽기를 유난히 좋아해, “책만 읽는 바보”로 자처하였다. 그의 손자 이규경도 할아버지처럼 책을 사랑해 거질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남겼다. 문장가의 언행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사람들이 퍽 많았다. 충신 박팽년도 그랬고, 개화사상가로 이름난 박규수, 실학의 집대성자로 후세가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인품과 행실에 결함이 많아서 비난을 받은 이도 없지 않았다. 그 가운데는 세상의 오해를 받은 이들도 있어, 허균을 예로 들 수 있다.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도 그런 범주에 포함된다. 세종의 총애를 받은 문장가 권채도 학식과 문장은 빼어났으나 도덕성에 하자가 있었다고 한다. 또, 기묘사화의 장본인으로 알려진 남곤도 글은 뛰어났으나 품행 또는 인격에 결함이 많았다.
문 3: 조선 시대 문장에도 트랜드가 있었을까? 지금처럼 유행이 빠르게 바뀌지는 않았으나, 그 시절에도 인기 있는 문장이 변하였다. 가령 15세기에는 실용적인 문장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세종 때는 다양한 실용서적이 편찬되었다. 16세기부터는 성리철학이 문장을 지배하였다. 고려시대에 각광을 받던 화려한 문체가 쇠퇴하고, 그 대신에 평이하고 담담한 문장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17세기에는 새로운 문체가 일어났다. 허균은 어떤 글을 쓰든지 자신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지는 글을 쓰고자 노력하였다. 18세기에는 성리학적 문장 미학과는 전혀 결이 다른 문장도 등장했다. 실학자 이익은 비판적이고 실증적인 성향의 글을 주로 썼는데, 이런 성향이 홍대용과 김정희 등에게도 이어졌다. 19세기 후반에는 최한기라는 근대적 지식인이 등장하여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자연과학적 발견과 관찰을 강조하며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였던 것이다. 우리 역사상에도 이처럼 문풍이 여러 번 바뀌었다.
문 4: 조선의 명문장과 ‘요즘 글’을 비교하면 어떠할까. 조선 시대는 문장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었다. 그런 점에서 ‘문장왕국’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도 글쓰기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다르다. 다종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글이 생산되고, 소비 또는 유통된다. 우리는 문장력을 빌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문장가라야 출세하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공을 초월해 공통점이 있다. 지금 세상에도 글로 세상의 문제를 파헤치고, 미래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글 때문에 피해를 입는 필화(筆禍)도 없어지지 않았다. 20세기의 양심적 지식인 리영희는 글로 말미암아 여러 번 감옥에 갇혔다. 미래에도 글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이제 끝으로 좋은 문장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할지 잠깐 생각해 보자. 두 가지 생각이 드는데, 첫째는 글쓴이의 사유가 깃든 글이라야 한다는 점이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느껴지는 글, 즉 글쓴이의 학식과 인품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문장이 최고일 것이다. 둘째로, 트렌디하면서도 개성적인 문장이다. 새로운 사상적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린 허균의 글이 새삼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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