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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정책 부재는 여성인권 침해 |
-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할 것을 권고 -
□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소위원회 위원장: 남규선 상임위원, 이하 ‘차별시정위원회’)는 국가가 임신중지권리 보장을 하지 않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등이 침해되고 있다며 제기된 진정사건을 조사하여, 해당 진정사건은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이유로 해당 진정은 각하하되, 헌법재판소의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지속된 입법 공백과 2020년 안전한 임신 중지가 가능한 의약품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정부 발표 이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여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 및 임신중지 이후 양질의 의료에 대한 접근성 보장을 위해 정책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정책권고를 검토하고, 2024년 9월 25일 보건복지부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 보건복지부장관에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공백으로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낙태’, ‘중절’ 등의 부정적인 용어를 ‘임신중지’ 또는 ‘임신중단’ 등으로 관련 정책용어를 정비할 것,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를 공공보건의료 전달체계 내에서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 △의약품 사용에 의한 임신중지를 포함하여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의료종사자를 교육하고, 임신중지 지원 가능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률개정을 추진하고 같은 법 시행령 제15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삭제하여 포괄적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할 것을 권고하였다.
○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는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하여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 차별시정위원회는 ‘임신을 중지할 권리’는 유엔여성차별철폐 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에서 여성의 주요 권리로 명시되고 있음에도 현재 대한민국 여성은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찾기 어렵고,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용적 부담이 크며, △세계보건기구가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한 유산유도제를 2023년 현재 96개국에서 도입했으나, 대한민국은 유산유도제가 도입되지 않아 수술적 방법에 의존하거나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의약품을 구매해야 하는 등 임신중지의 이용가능성 및 접근가능성이 제한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로 인해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자기결정권의 향유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며,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에게만 필요한 의료 개입을 거부하거나 방치하는 것이므로 성별을 이유로 평등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 9월 28일 세계 안전한 임신중지의 날을 앞두고 이번 결정은 임신중지권이 여성의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을 포괄하는 권리로서 임신중지를 재생산 권리로 인정한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자기결정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지도록 만드는 사회경제적, 보건의료적 조건이 제공되어야 함을 의미하므로, 국가는 이를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 판단 가. 판단기준 「대한민국헌법」(이하 ‘헌법’이라 한다) 제11조 제1항은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하 ‘위원회법’이라 한다) 제2조 제3호 나목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인종, 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재화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나. 조사대상 여부 진정인은 피진정인들이 임신중지를 위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보장하지 않으므로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진정은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아 구체적인 피해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위원회법 제30조에서 정한 조사대상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각하한다.
다. 검토 배경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지만 수년째 입법 공백은 계속되고 있으며, 임신 중지 의약품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2020년 당국의 발표도 답보 상태에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20년전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한 임신중지 의약품은 2023년 현재 전 세계에서 96개국이 도입했지만 대한민국은 이를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낙태죄 비범죄화와 제도 공백의 모순 상황에서 대한민국 여성의 임신중지 관련 실태 파악이 요청된다. 임신 중지에 대한 적절한 정보와 의료서비스 등 제공 여부를 점검하고 여성의 건강권, 자기결정권, 재생산권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 및 임신중지 이후 양질의 의료에 대한 접근성 보장을 위해 정책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위원회법 제19조 제1호, 제25조 제1항에 따라 정책권고를 검토하였다. 본 검토에서는 ‘낙태’, ‘중절’이 가지는 낙인과 부정적 함의를 고려하여 법률 등 인용의 경우를 제외하고 가치중립적 용어로서의 임신중지(pregnancy termination)를 사용한다.
라. 검토 기준 판단기준 1) 헌법 제10조, 제11조, 제12조, 제36조, 제37조 2) 세계인권선언 제3조 3)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제2조, 제12조, 제16조 1. (e) 4)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7조 5)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2조
마. 참고 기준 1)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협약 제12조(여성과 보건) 일반권고 24호(1999) 2)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협약 제2조에 의거한 당사국의 주요 의무에 관한 일반권고 28호(2010) 3)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대한민국에 대한 제7차(2011), 제8차(2018), 제9차(2024) 최종견해 4)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 제6조 생명권에 관한 일반논평 제36호 (2019) 5)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 도달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규약 제12조) 일반논평 제14호(2000) 6)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 성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제22호(2016) 7)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 대한민국에 대한 최종견해 (2017) 8) 아동권리위원회 청소년기 아동권리의 이행 일반논평 20호(2016)
바. 임신중지 현황 - 임신중지의 법·제도 지형 유엔 조약기구 등은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Decriminalization)를 권고하고 있다. 유엔 조약기구가 1990년대 초기에는 극단적 불허 국가에 대해 임신중지의 ‘허용 사유’를 점진적으로 늘릴 것을 권고하였으나, 이후 일부 사유로 허용 국가에서도 임신중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증거를 발견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완전 비범죄화 권고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권고하고 있다. 「형법」은 1953년 제정 당시부터 전면적 낙태 금지 및 처벌 규정을 두었는데, 1986년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규정이 생기면서 일부 합법적 임신중지가 가능하게 되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형법」상 범죄행위로 규정하였던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에 대해 한정적인 위법성 조각 사유로 기능하였다. 2019. 4. 11.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의사낙태죄)에 대한 입법시한이 만료되어 2021. 1. 1. 해당 조항의 효력이 상실되었다. 따라서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존속과 관계없이 현재 국내 법률상 임신중지의 비범죄화는 확정된 상태이다.
‘낙태’는 오랫동안 범죄로 규정되어 여성이 오롯이 형사처벌의 위험과 도덕적 비난, 낙인을 감수해 왔던 역사를 간과할 수 없고,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규범과 인식으로 인해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 재생산 권리 담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재생산권은 1968년 유엔 세계인권회의에서 채택한 ‘자녀의 수와 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선언에서 출발한다.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제15조에서 “자녀의 수 및 출산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동일한 권리와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보, 교육 및 제 수단의 혜택을 받을 동일한 권리”라고 재생산권을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재생산권은 국제인권규범에서 여성의 주요 권리로 명시되고 있다. 한편,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을 인정하는 판결 이후에도 이를 보장할 실효적인 방안을 공론화하고 논의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여 입법, 정책 입안이 지연되고 있다. 이는 이사건 진정 조사에서 보건복지부와 식약처가 ‘관련 법령이 개정되지 않는 한 권리보장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밝힌 입장과도 상당 부분 일치 된다.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2019. 4.) 이후 현재 5년이 경과하였고, 낙태죄가 비범죄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재생산 권리보장을 위한 정부의 지원 정책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의료현장과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놓인 현실 상황은 ‘낙태죄’가 존재하였던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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