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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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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임실 신안서원입니다.
신안서원 위치는 임실군 임실읍 신안1길 8-12번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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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은 북쪽으로는 만덕산(763.3m)을 경계로 전주와, 북동쪽으로는 성수산(875.9m)을 경계로 진안과, 남서쪽으로는 회문산(774.8m)을 경계로 순창과, 서쪽으로는 옥정호 너머로 정읍과, 남쪽으로는 섬진강 건너 남원과 접하고 있습니다.
임실의 물줄기는 만덕산서 발원한 오원천(烏院川)이 임실의 북서쪽을 관통하여 옥정호를 이루고 성수산서 발원한 오수천(獒樹川)이 임실의 동남쪽을 관통하여 섬진강 본류와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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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역사는 삼한시대는 마한에 속하여 신운신국이라 했으며, 백제시대 ‘잉힐군’으로 거사물현과 마돌현을 거느렸고, 통일신라시대는 남원부에 임실군을 두었으며, 759년(경덕왕 16) 잉힐군을 임실군, 거사물현은 청웅현, 마돌현은 마령현으로 개칭하였습니다.
고려시대는 전라도 전주목에 임실군을 두었고 조선시대는 1413(태종 13) 임실군을 임실현으로 개칭하였다가 1895년 다시 임실군으로 개편되었습니다.
1906년 남원부의 6개방이 임실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12면 130리, 1979년 임실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1읍 11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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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신안서원은 1588년(선조 21) 한호겸(韓好謙)의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문인들이 창건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오랫동안 유지만 남아있다가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였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습니다.
1936년에 단을 설치하였으며, 광복 후 1958년 10월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이서와 한호겸만을 봉안하였으나, 1788년(정조 12)에 사림들의 결의에 따라 송경원(宋慶元)·한필성(韓必聖)·한명유(韓鳴愈)·송시태(宋時態)를 추가하고, 다시 김수(金洙)·강백진(康伯珍)을 추가, 모두 8현을 배향하였습니다.
1819년에는 도내 유림의 공의에 따라 회암 선생의 영정을 봉안키로 했는데 이는 순창군 무이서원의 예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해 9월에는 함평의 자양서원(紫陽書院)에 있던 주자(朱子:朱熹)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 주벽(主壁)으로 봉안하고 ‘신안’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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