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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친구 하나 있습니다. |
최종수(천주교 전주교구 신부)
그런 친구 하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 지고 힘들 때 위안이 되고 기쁠 때 먼저 소식을 나누고 싶고 우리의 세월이 늙는다해도 변치 않을, 하늘까지 영원할 친구들
고구마 수제비 김치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정규중학교에 진학 못하고 한 해 두 해 늦게 고등공민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초여름에는 옷에 박힌 보리가시로 살갗이 꺼끄런 보리를 베고 물쐐기 쏘이고 거머리 물어 뜯는 모내기 여름철을 보내고 가을엔 허리가 끊어질듯 벼포기를 베며 뒤쳐진 친구들 서로 도와주고 땀방울 식히며 샛거리 나누고 동고동락했던, 대민지원으로 학교 운영비를 벌어야 했던 친구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신 은사님들 어깨를 들썩이며 교복 소맷자락으로 봇물처럼 터진 눈물을 닦아야 했던 8회 마지막 졸업식, 학교는 문을 닫고 검정고시 합격한 친구들은 고등학교로 낙방한 친구들은 일터와 공장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사십 사년 만에 상봉하는 그리운 친구들 옥정호 높은 가을하늘 아래 붕어섬 출렁다리처럼 술렁이는 마음들 흥겨운 콧노래로 국화꽃길을 걷는다 ㅡ입을 살짝 찢어 보세요! ㅡ하! 하! 하! 쪽빛하늘 바다를 출렁이는 웃음과 미소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주차장 마당에서 벌어진 청백운동회, 원형점수판에 검정 고무신 던지기 효자손으로 물병 돼지몰이 종이비행기 멀리 날리기 고리 던지기, 니나노 얼씨구 팀으로 나누어 목이 쉬도록 외치는 구호와 웃음이 옥정호 석양노을보다 뜨겁다.
회갑을 맞이한 친구들 잔치까지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들 찰밥 돼지갈비 파김치 묵은 김치 낙지 흑산도 홍어에 술잔이 오간다 친구들 사랑방이 되어주고 살뜰히 챙겨주어 우정상을 받는 두 친구들 <사랑해도 모자란 동행> 시집을 선물로 받은 친구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시 한 편을 낭송한다 ㅡ시를 낭송하라니까 목차를 펴면 어떡해! ㅡ하! 하! 하!
포도 딸기농사 겨울에는 감자 하우스 농사 사철 쉴 틈 없이 농사 짓느라 무릎이 망가진, 자라는 것들 들여다보고 수확하는 기쁨이 크니까 몸으로 힘든 것을 견뎌낼 수 있다는 친구가 선물을 받고 소감을 말한다 "우리 친구들 만나서 반갑다. 올 때마다 오래 동안 못 봤던 처음 나오는 친구들 만나게 되니 너무 행복하다. 며칠 전부터 설레였어.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지...,"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우리 친구들 오래오래 건강하게 만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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