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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93)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임실 진구사지 석등입니다. 진구사지 석등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734번지에 있습니다.
임실 진구사지석등(珍丘寺址石燈)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고복형(鼓腹形) 석등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석등입니다. 상륜부의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거의 완형에 가깝습니다. 지대석부터 옥개석까지 팔각형이나 기단 간주석을 장구모양으로 만든 이형 석등으로 크기에 있어 장중하면서 하대석과 옥개석에 표현된 과장된 귀꽃에서 9세기 후반 석조미술의 공통된 표현양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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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이 위치한 장소는 용암리 북창마을로 사명을 알 수 없어 용암리사지 석등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5차례의 학술발굴 결과 ‘진구사(珍丘寺)’라는 명문기와가 발견되어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진구사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고구려 보장(寶藏)스님의 제자인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에 의해 창건된 사찰입니다. 절터에는 석등 이외에 석조여래좌상, 탑지, 건물지, 석축 등이 남아 있는데, 석조여래좌상은 양식적으로 석등과 비슷한 9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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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은 기단부, 화사석, 옥개석, 상륜부를 차례대로 올려놓은 팔각당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단부는 바닥에 팔각의 지대석을 놓고 기대석과 하대석을 올려 놓았는데, 기대석의 측면에는 각 면 1구씩의 안상이 배치되었습니다. 기대석의 상면에는 1단의 각형 받침이 낮게 조출되었습니다. 하대석은 8엽의 복련을 새겼는데, 볼륨감이 뛰어나며 연잎의 끝부분에 높게 솟은 삼산형(三山形) 귀꽃이 배치되었습니다. 하대석의 상면에는 각형 받침 위에 운문대(雲文臺)를 놓아 간주석을 받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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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의 세부적 수법에서 안상과 귀꽃의 사용은 9세기 석조미술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양식이나 하대석 상부에 표현된 운문대나 고복형 간주석의 세부표현은 이 석등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한편 옥개석 8면 모두에 화창을 마련하고 옥개석 전각부 중앙을 접어 올린 수법은 실상사 석등이나 담양 개선사지 석등에서도 나타나는 수법으로 호남지역에서 성행했던 고복형 석등의 공유 양식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석등은 크기에 있어 두 번째에 속하는 대형으로 상륜부의 일부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양호합니다. 특히 9세기 중반 이후 호남지역에서 유행했던 고복형 석등의 대표작으로 안정감있는 비례와 화려한 세부 조각수법을 통하여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 석등 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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