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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203)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완주 호선서원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길 73-16번지에 있습니다.
지금의 완주군은 옛 전주부(全州府)와 고산현(高山縣)이 합해 이루어진 곳입니다. 옛 전주부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비사벌 또는 비자화였습니다. 555년 이곳에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었다가 565년에 폐지되었으나, 신라의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완산주(完山州)를 다시 설치했습니다. 757년(경덕왕 16)에 전주(全州)로 개칭, 1소경(小京)·10군(郡)·31현(縣)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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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효공왕 4)에 견훤이 무주(武州 : 광주)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의 부흥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936년(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습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습니다. 995년에는 강남도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습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전라도안렴사 정지상이 원나라 사신인 야사불화를 감금한 사건으로 1355년(공민왕 4)에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후 1392년(태조 1)에 전주 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전주의 별호는 완산(莞山)·견성(甄城)이었습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전주군, 1896년에 전라북도 전주군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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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삼례읍에 위치한 완주 삼례 문화예술촌은 역사와 현대를 어우르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때 군산, 익산, 김제와 더불어 양곡수탈의 중심지였습니다. 1920년에 세워져 2010년까지 사용되던 삼례읍 후정리 삼례양곡창고(등록문화재 제580호)는 쌀을 채우던 창고에서 이제는 문화와 예술을 채우는 삼례문화예술촌으로 대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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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에는 "비비정(飛飛亭)"과 "호산서원(湖山書院)"이 있습니다. 이곳은 삼례 문화예술촌에서 약1,2km정도 걷다보면 만경강이 시작되는 언덕 위에 정자 하나가 서있습니다. 선조6년(1573)에 무인 최영길이 세웠다는 "비비정"입니다. 비비정 아래 흐르는 강을 한내(寒川)라고 하며, 옛날에는 비비정 가까이 한내위에 소금, 젓갈등을 실은 돗단배가 오르내렸고, 한내의 눈부신 모래빛이 유명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들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비비정 아래에는 옛 만경강 철교(등록문화재 579호)와 비비정 예술열차가 있으며, 그 너머로 펼쳐지는 만경강의 석양은 황홀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옛 만경강 철교는 삼례 양곡창고와 마찬가지로 일제 수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경강 철교 위에는 "호산서원"이 만경강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호산 서원(湖山書院)은 1805년(순조 5) 창건 후, 서원 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58년 복건하였습니다. 건물은 사당(祠堂), 강당(講堂), 내삼문(內三門)이 있습니다. 배향 인물은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년~1689), 김동준(金東準), 정숙주(鄭叔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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