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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무임 승차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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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장발장 은행장)
현직 대통령에 의한 내란 시도는 12. 3 계엄선포 47일만에 윤석열을 구속함으로써 일단 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영장 발부 이후 벌어졌던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의 난동과 폭력 등은 한국 민주주의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2016년 촛불혁명 이래 우리 시민사회가 자랑으로 여겨왔던 평화적 시위 전통이 위협받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극우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내란 수괴” 윤석열의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우리나라 기득권 층의 가려진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평생 “법치”를 입에 달고 살았을 뿐 아니라 그걸로 밥줄을 삼고, 입신출세하고, 끝내는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자가, 더구나 쿠데타 실패 이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는 당당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자가, 체포영장 집행과정에서 보여줬던 추태는 그 어떤 막장 드라마 보다 더 역겨웠다. 더구나 자신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극우 시위대의 저항을 부추기고, 국민을 분열시키려 한 행위 등은 어떤 말로도 용서가 안된다.
그런데 그 막장 드라마의 주연 뿐 아니라 조연들의 면면도 역겹고 추하기는 마찬가지다.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한남동 관저 앞으로 달려간 44명의 국힘 의원들. 그들의 충성 대상은 결국 국민이 아니고 헌정을 파괴하려 했던 “내란 수괴”였던 것인가? 이런 의심은 국회의원을 다섯 번 째인가 한다는 윤상현 의원이 극우 선동가 전광훈 앞에 90도로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이들의 충성 대상은 결코 국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무색해지는 장면들이다.
12. 3 내란 시도 과정에서 “내란의 조연”으로 동원되었던 경찰은 윤석열 체포 과정에서 일정 부분 명예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대행의 대행” 신분으로, 국회가 선출한 헌재 재판관 3명 중 두 명만을 선별적으로 임명하고, 국회가 송부한 법안에 대해서는 다시 거부권을 행사한 최상목 대행의 처신은 여전히 의구심을 자아낸다. 특히 윤의 체포 과정에서 보여 준 그의 행태는 단순히 그 한 개인의 성향 뿐 아니라 관료 사회 전반의 성향까지를 의문시하게 된다. 이른바 “영혼 없는 관료 집단”에 대한 오래 된 의문이다. “주권 재민”과 “삼권 분립”이 뼈대를 이루는 헌정 질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보다는 개인의 출세와 입신양명이 인생의 주요 목표였을 고시생 시절의 모습들도 오버랩된다.
12. 3 쿠데타와 그로 인한 내란 위협은 윤석열과 쿠데타 가담 세력들의 체포와 구속으로 일단 안정되는 것 같지만 내란을 지지, 엄호했던 ‘국민의 힘’에 대한 지지율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은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국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결과도 나온다.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면서 사람들 관심이 대선 국면으로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여론조사에 응하는 보수 세력들이 과표집(過標集) 되고 있다는 분석들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니 모든 것을 다 양보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내란 비호 세력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인지, 민주주의를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과거 박정희 유신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그 시절 상투적으로 듣던 말이 있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반독재운동 세력을 향해 독재 정권이 각종 긴급조치와 계엄령들을 남발할 때 마다 써먹던 말이다. “이 조치로 인해 생업에 성실히 종사하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일부 극소수 극렬분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 반유신독재 투쟁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려는 주변 세력을 차단하기 위한 독재 정권의 통치 수법이었지만 사실상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은 이 간판 뒤에 숨었다. 그리하여 “데모하는 것들과 선량한 자신들”을 분리하며 18년 유신 통치의 지지자 노릇을 했던 것이다. “까라면 깐다”라든가,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라는 군대식 구호가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직장과 학교, 심지어 가정 내에서까지 공공연히 통용되었던 시절이다. 이후 박정희는 사라졌지만 독재자가 사라진 그 자리를 민주주의 교육이 메우지는 못했다.
민주주의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은 이후 1980년 광주에서의 엄청난 희생, 전두환 독재 7년간의 각종 공안 사건, “삼청 교육”, “녹화 사업”등의 국가 테러, 수 많은 학생,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을 통해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교훈 역시 모든 국민이 배웠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짜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위와 같은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러다 또 한편 생각해 본다. 오늘날 그나마 개선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나 환경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노동 운동의 산물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쨌든 노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대변되었다. 그러나 한국 노총과 민주 노총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노동운동 조직율(전체 노동자의 조합 가입율)은 여전히 10% 대에 머물러 있다.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획득된 혜택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만 그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분투한 것은 온전히 10% 노동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노동운동의 기초가 연대(Solidarity)라면, 한국 노동운동은 다수의 무임승차에 의해 매우 가냘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란 엄호세력을 지지한다고 하는 3-40%의 국민을 생각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기초도 노동운동의 그것처럼 그리 튼튼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내란 수괴 피의자는 이제 “안전한 곳”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후 재판 과정에서 또 얼마나 황당한 논리와 궤변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피곤하게 만들지, 법 기술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진면목”을 두고두고 보아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미리 짜증이 난다. 그러나 짜증보다 더 큰 걱정은 민주주의에 기생해 온 수 많은 무임 승차자들의 선동과 부화뇌동이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다. 고로 사법 판단 대상이 아니다” 박정희가 지하에서 관 뚜껑을 열고 박수 치면서 나올 것 같은 이런 시대착오적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 정치인이나 법 기술자들, 그리고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들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소위 “논객”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또한 이런 시대착오적인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이 의외로 많다는데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진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시민적 각성과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민주주의라는 기차에 꾸역꾸역 올라타고 있는 이 공짜 손님들을 과연 어찌해야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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