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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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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정읍 강증산 생가터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학봉마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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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산(姜甑山)은 증산교 교조로 본명은 강일순(姜一淳)입니다.
증산 계통의 종교의 교조. 옥황상제를 자처하였으나 39살에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대한제국 시대의 증산교의 창시자(創始者)이자, 모든 증산 계통 종교의 개조(開祖)가 되기도 합니다.
동시대 제자들은 그를 최제우 다음에 온 대선생ㆍ미륵불의 화신ㆍ옥황상제ㆍ한울님 등으로 다양하게 인식했고, 현재 존재하는 증산계통 종교들도 거의 동일합니다.
동향 사람들은 강일순을 존경하거나 두려워했고 혹은 미치광이 취급하기도 했으며, 강씨 문중에서는 정계에 나가 출세를 하기를 원하였으나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천지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집안의 기대를 망쳤다고 나쁘게 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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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남녀의 평등으로 여자도 세상에 나가 이름을 떨칠수있는 것과, 양반과 천민이나 평민, 서자의 계급(서얼)의 신분제 철폐의 평등, 이혼한 여자의 축하받는 재혼 등이 가능한 후천세상을 펼치겠다는 당시의 양반 사회에서 상상도 못하는 주장을 해서 문중의 지탄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김일부도 비슷한 주장을 해서 문중에서 배척을 당해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종교의 큰 산맥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강일순의 사상은 그의 사후 제자 차경석에 의해 계승되어 보천교로 발전하였고, 현대의 증산도, 대순진리회, 태극도 등 수많은 증산계열 신종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들 종교는 강일순이 주장한 '천지공사'와 '해원상생(解冤相生)', '보은(報恩)' 등의 사상을 바탕으로 혼란했던 시대 속에서 민중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희망을 제시하며 큰 교세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탄압 속에서도 보천교는 전국적으로 큰 교세를 유지하며 민족의식 고양에 힘써,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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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生家)터는 당사자가 태어난 곳으로 현재 집은 없고 터만 남아 있는 곳입니다.
강증산(姜甑山)이 태어난 생가터는 우측 상단에 시루봉(102.3m)이 주산(主山)으로, 시루봉(102.3m)은 성인군자(聖人君子)와 문사(文士)를 기약하는 빼어난 문필봉입니다.
두승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동학의 현장 황토현을 굽어보고 솟구친 봉우리가 시루봉입니다.
그 시루봉 아래 자리 잡은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손바래기 마을 객망(客望)리는 선인독서仙人讀書) 혈이 있다 하여 선(仙) 바래기라고 하던 것이 변하여 손바래기가 되었는데, 이 마을에서 조선 후기의 종교사상가인 증산 강일순 선생이 태어났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5년 간에 걸쳐 세상을 주유하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강일순 선생이 모악산 대원사에서 1900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는 곧바로 선천시대는 양의 시대 즉 남자의 시대였으나. 후천시대는 음의 시대 여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남조선 뱃노래를 부르며 이 땅으로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9년 간에 걸쳐 천지공사를 행하던 강일순 선생은 190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뒤 이 땅에 수많은 종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 속에 하나 둘 씩 사라지고 큰 종파가 여러 개 남아 번창하고 있습니다.
증산법종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강증산은 4남매를 두었는데 어릴 때 상하고 막내 딸 순임.만 생존해 아버지 유지를 받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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