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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반공주의, 이제는 폐기해야 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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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반공주의는 일제 강점기에 이미 등다. 당시 한국교회가 공산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신학적, 정치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것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 선언하며 종교 자체를 지배계급의 도구로 규정한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용인할 수 없었기 때다. 영혼의 구원과 내세를 중요한 가치로 보는 기독교와 달리 공산주의는 현실 세계의 물질적 조건과 계급 투쟁만을 강조했기 때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교회는 민족주의와 결합해서 독립과 민족 자결을 주장했던 반면에 공산주의는 민족 정체성보다 노동자 계급의 연대를 위에 두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주장했기 때다. 또한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며 기존 체제를 인정하는 한국교회 운영의 사립학교 교육 방향과 달리 공산주의는 기존 질서를 부정하며 뒤흔들었기 때다.
1945년 해방 직후에 월남한 개신교인들은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공산주의를 반다. 그들은 북한의 공산화 과정에서 교회를 폐쇄당하고, 예배와 집회를 금지당하며, 교회 건물을 몰수당하는 기독교 탄압을 직접 경다. 그들은 길선주 목사나 조만식 장로 등 널리 알려진 개신교 인사들이 투옥되거나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아니라,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식량 배급을 제한당하고, 직장에서 차별당하며, 자녀의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는 탄압을 간접으로 경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서 지주들은 땅과 재산을 강탈당하고 강제 이주를 당해야다. 이런 탄압을 경험하고 탈출한 월남한 개인교인들은 공산주의를 하나님을 대적하며 신앙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적그리스도 내지는 사탄의 세력이라 규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실체를 증언하는 전도사로서 신앙의 자유를 반공주의와 일치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월남한 개신교인들의 증언이 현실이 되자, 공산주의는 한국교회 개신교인들에게 공동의 적이 다. 한국전쟁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사이에 신앙전쟁이, 선과 악의 총체적인 대결이 구도를 다. 그리고 한국전쟁 가운데 집단적으로 경험한 트라우마는 성전(聖戰)의 프레임을 만들었고, 개신교 목사들은 군에 자원해서 군인들의 사기 진작과 반공 사상의 고취에 앞다. 한편으로 한국군과 한국 국민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을 때, 미국이 주도한 유엔(UN)군은 인천상륙 작전으로 전세를 역전다. 미국의 군사원조, 경제 원조와 함께 들어온 많은 구호물자는 한국 국민에게 “구원자 미국 없이는 한국도다. ”라는 인식을 각인다. 한국 개신교인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은 기독교 문명이고, 전체주의 공산주의는 무신론 문명이라는 이분법을 구축하면서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를 일치다.
1950년대 중후반 이후 북진통일로 공산주의를 없애겠다는 전투적 반공주의는 전쟁을 원치 않는 국제사회의 현실과 한국군의 허약한 현실, 폐허가 된 남한 현실을 직시하며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공산주의 전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승공적 반공주의로 전다. 무력에 의한 적극적 섬멸 대신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해서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장기적이고 실용적인 전략의 채택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잘살아 보자’는 기치를 내건 5.16 군사쿠데타 세력을 환영했고, 이승만 정권 못지않게 박정희 군사정권과 밀월관계를 다. 한국교회는 군사정권이 주장한 ‘경제개발과 근대화’를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영적 전쟁으로 이해했고,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영혼을 구원받자, 건강하게 살자, 부자가 되자”라는 ‘삼박자 구원’의 메시지로 응다. 또한 한국교회는 국가가 주도한 새마을 운동과 가족계획 사업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국가조찬기도회’로 정착한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개최해서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을 종교적으로 정당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승공적 반공주의의 길을 다.
최근 한국교회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극우주의자들은 북한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악의 축이라 규정하고, 대화와 협상, 협력을 시도하는 모든 것을 종북(從北)이라 판다. 그들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을 절대시하고,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을 종북좌파 내지는 한국사회의 적으로 설다. 그들은 사회정의와 평등, 다문화와 성소수자의 권리, 친환경 등을 대변하는 진보적 가치를 부정하며, 선과 악의 대결 구도 속에서 극심한 사회적 분열을 조다. 더욱이 그들은 교회의 설교강단과 기독교 단체들로, 기도회라는 명분 아래,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 수단이 되기를 자다. 그들은 기독교의 ‘환대의 윤리’와 달리 성소수자, 난민, 이주민, 이슬람 신도 등을 앞장서서 배제하고,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편가르기를 하는 집단으로 기독교의 공공성을 거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떨어지고, 젊은 세대가 교회를 급격히 이탈하는 배경에는 한국교회 극우주의자들이 똬리를 틀고다.
1990년대 이래로 소련의 해체와 함께 공산주의는 소멸했다고 해도 과언이 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소련은 경제 개혁을 위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 정치적 개방을 견지하는 글라스노스트 정책 이후 해체되었고, 곧이어 등장한 러시아는 사실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포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휘하는 독재자 ‘푸틴’만 있을 다. G2 국가로 격상한 중국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백묘흑묘론의 기치 아래 이미 오래전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경제 실용주의로 전다. GDP 증대와 기술 발전, 글로벌 시장진출의 확대가 그들의 우선순위가 다. 베트남은 개혁, 개방을 기치로 하는 도이머이 정책 아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다. 세계적인 제조업의 허브로 부상한 베트남에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진출한 것은 그 증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전통적인 공산주의 국가라 말할 수는다. 그들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주체사회를 주장하지만, 수령의 위치에 있는 김정은 국방위원장만 주체일 뿐, 주민은 전체주의의 부속품처럼 살고다.
이렇게 1990년 이후 냉전 시대는 지구상에서 멈추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한 명실상부한 공산주의는 자취를 감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냉전적 사고가 지속되고 있고, 반공, 반북, 종북좌파, 빨갱이 유사한 언어와 이데올로기적 주장이 전가의 보도나 만병통치약처럼 난무하고다. 정치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반공과 안보에서 찾고 있고, 편향된 역사 인식 아래 한국 현대사를 반공과 경제 발전의 성공 역사로 왜곡하고다. 일부 대기업과 보수 언론 등 경제적 기득권을 누려온 보수 세력은 안보 불안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담보하는 구조를 선호하고 있고,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개혁 요구를 거절하기 위해서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종북좌파 세력을 운운하고다. 이러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유착되어 있는 한국교회의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그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무지한 교인들, 그리고 이에 합류해서 정치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려는 극우주의자들이 냉전적 사고의 나팔수로 행동하고다.
작금의 현실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한 방해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냉전적 사다.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힌 세력들은 대화와 협상, 협력을 주장하는 남북 간의 평화 프로세스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화합과 신뢰를 파괴하고다. 그들은 배타성과 폐쇄성을 강조하는 낡은 사고로써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경쟁력을 퇴화시키고 있고, 허위적인 군사 안보의 주장 아래 기후 위기, 사회적 불평등, 팬데믹 등으로 야기된 진정한 안보를 방관하고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하는 기독교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평화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인다. 부정부패와 불의를 방지하는 세상의 소금으로,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의 나라를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 자기 역할을 확다. 이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의 본질 위에서 권력의 편이 아닌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야다. 전쟁과 분단을 거부하는 선제적 평화의 주체자로서 소외된 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주어야다. 또한 진실한 섬김과 희생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반공주의의 폐기는 첫 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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