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 운동회, 김밥, 그리고 김영란 법
대학 때 여름방학에 학생회주관 농활을 다녀오곤 했었다.
우리 집도 농사지으면서 남의 집 농사일 하러 간다고 부모님께 지청구를 듣곤 했지만, 학생운동을 하면서 여러 이유로 자의반 타의반 끌려가기도 했었음을 고백해본다.
(솔직히 내가 속했던 정파에서 시행했던 공활-공장활동-을 갔으면 차라리 알바비라도 받지~라는 생각도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공활도 갔었고 노동자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그들의 생활을 밀접히 접하며 노동해방의 의지를 북돋아야 한다는 지상명제는 치기가 차고도 넘치는 풀 뜯는 소리였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한 달간은 술값걱정이 없었던 쏠쏠한 기억은 남는다.)
여하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산하 지역학협과 지역 농민회가 협의해서 농활 갈 장소를 정하고, 농활시 지켜야 할 수칙을 정하고, 전대협에서는 각 농활대에 통일된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당시엔 억압받고 핍박받는 농민형제들에게 그 어떤 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농민들에게 그 어떤 것도 받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일하다 말고 논밭주인이 새참으로 가져온 것을 사이에 두고는 먹어라, 못 받는다 양측의 실갱이 아닌 실갱이가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만 홀로 사시는 집에 농사일을 거들러 갔던 그 날.
새벽일 나가서 해가 반쯤 차오른 오전시간에 할머니께서 새참으로 고구마를 내 오셨다. 통일단결을 부르짖고 지침은 위대하며 지도부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이적행위라는 당시 학생운동 다수정파의 저 어마무시한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전통덕분인지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젊은 혈기의 학생들은 예의 못받는다며 하던 일을 멈추고 연로하신 할머니와 실갱이를 벌인다.
할머니께서는 “느그들 맘은 잘 아는디 손주 같은 애들 일 시킴서 새참도 안준대. 시골일 험서 무신 그런 경우가 다있다냐. 어여 먹어라”라고 동네 법을 들이미신다.
긴 시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끝내 못먹겠다는 학생들에게 화가 나신 할머니는 그 고구마를 땅에 버리고 으깨버리면서 벼락같은 한마디를 남기신다. “다시는 우리 집 일 오지마라”
얼마 전 우리학교에서 가을대운동회가 열렸다. 행사 전날 교무회의에서는 김영란 법에 대한 연수가 진행되었고,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핵심은 ‘학부모가 주는 그 어떤 것도 받지 말고 행여 교사들이 관리자에게 줄 생각도 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운동회 날 점심시간. 한 선생님이 학부모와 김밥 한 줄을 사이에 두고 난처한 실갱이를 하고 있다.
받을 수 없다는 선생님과 법이 제정된 것을 알고 있지만 이건 집에서 내가 애들 주려고 김밥 싸면서 한 줄 더 싼거다. 많이도 아니고 딱 한 줄이다. 그냥 선생님 고마워서 가져 온 거다. 이건 정이다. 내가 청탁하려면 고작 김밥 한 줄로 하겠느냐. 뭐 대충 멀리서 들으니 이런 이야기다. 하지만 안받겠다는데 억지로 입에 처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그 김밥은 학부모의 가방으로 사라지고 서로 멋쩍은 표정만 남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김밥 한 줄이라도 부당한 공여행위가 될 수 있다는 문화가 자리 잡아 갈 테고 자연스레 학교에서 사라지게 될 장면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서로 참 난감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 장면을 보면서 농활 갔던 때 새참으로 싸온 것을 정히 안먹는다면 버리겠다며 실제 실행에 옮기셨던 그 할머니의 형언하기 어려운 화가 난 듯도, 이해할 듯도, 서운한 듯도 한 그 표정이 잠시 오버랩되었다.
살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거나 상대의 이해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과정이 어려울 때 떠오르는 내 기억속의 주요한 한 장면이기도 하다.
민주적이고 인권 친화적 학교 만들기는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
존중은 인간적 신뢰를 형성하고 그 신뢰 속에서 참여와 자치. 배움과 성찰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情)을 넘는 부당한 공여행위는 그 신뢰관계를 깨뜨리고 불신하며 반칙을 하게 되는 양심배반의 도미노를 일으킨다.
스승의 날 꽃은 줘도 되는지 아닌지? 학생대표만 주는 것은 타당한지? 어디까지 가능한지 이런 논란이 이어지는 것이 교사에게 자괴감을 주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부당한 공여행위는 없어져야한다는 의식과 실천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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