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이념교육?
얼마 전 모 초등학교로 인권교육을 가서 겪은 황당한 일이다.
대개 외부강사로 인권교육을 가면 교무실에 들러 용무를 밝히고 안내를 받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능하면 교장실에 들러 인사도 하고 인권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 감사를 표하고 학교인권에 더욱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학교는 의무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항목이 너무 많다. 안전교육, 성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통일교육, 환경교육, 독도교육 등등. 개별 교과시간에 재구성하여 가르칠 수도 있지만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교육할 것을 권장하다 보니 정해진 교육과정 시간보다 의무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을 지경이다.
수업 시작 전 명함을 주고 인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명함을 유심히 살펴보던 학교관리자가 학부모의 이야기인양 빗대어 자기 속내를 이야기한다.
"전교조와 인권단체가 인권교육을 핑계로 이념교육을 한다는 학부모들의 오해가 있기도 하더라구요."
이런 이야기를 꽤 많이 들어왔고 이렇게 대놓고 말하니 오히려 토론이 되어 고맙기까지 하다,
'(ㅎㅎㅎ) 이념교육은 정권이 하지 않나요? 과거에는 학교에서 4대강 홍보하라고 하질 않나? 역사왜곡, 교과서 왜곡 하지 않나? 근데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는 아무 말 없이 하셨잖아요. 오히려 무비판적인 지식주입보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존중감과 권리의식을 가르치는게 훨씬 더 교육적이지 않을까요?
"..."
그리고 멋쩍게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교실로 가서 학생들과 한참 수업하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심지어 노크도 없이) 아까 그 관리자가 불쑥 들어온다.
학교관리자의 장학권과 교사의 수업권, 학생의 학습권은 보호되어야 하고 이 권리들은 상호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학교에선 대개 봄 방학에 교원토론을 통해 학교교육과정을 작성한다. 거기에 자기장학과 동료장학, 임상장학 등 장학의 시기와 횟수를 결정하고 그것에 따라 공개수업을 실시하는 시스템이다. 즉 사전에 교과와 시간에 대한 예고를 한 뒤 실시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수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그 누가 와도 함부로 수업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이고, 심지어 학부모가 수업 중에 들어와 교사에게 항의하거나 멱살을 잡는 등의 행위는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와 교권침해에 해당한다.
실제로 ‘불체포 특권’하면 떠오르는 것이 국회의원인데, 그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교육공무원법 제48조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4조에 의거 교원은 불체포 특권을 가지고 있다. 즉 교육활동 중에는 현행범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교육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만큼 교육활동은 최대한 보호되어야 하고 교사와 학생의 권리로서 인정받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 협의를 하고 수업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들어온다면 기꺼이 환영하겠으나 느닷없이 들어오는 것은 명백한 학생의 학습권 및 교사의 수업권 침해에 해당한다.
(만일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이 손님을 만나고 있는데 학생이나 교원이 느닷없이 들어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면 바로 예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평소에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교사들의 수업시간에 무시로 드나들고 간섭해왔기에 자연스레 했던 행동이리라. 아니면 인권교육을 핑계로 진짜 이념교육 소위 좌파사상을 물들이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감시도 하고 싶을 것이다.
느닷없이 들어온 관리자에게 황당하여 수업을 중지하고 어찌 오셨느냐고 물으니 아니 그냥 뭐~ 이러면서 얼버무린다.
급한 용무가 아님을 확인했으니 다시 수업은 진행된다.
'얘들아. 지금 인권교육하고 있는 거지?
너희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수업권은 보장되어야 하는 거란다.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누군가 교실에 들어온다면 이것도 인권(권리)침해에 해당해. 자신의 인권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정당한 방법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게 맞는 거야. 알았지? '
무심히 교실을 둘러보는 척하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관리자는 이 말을 듣자 얼굴이 벌개져서는 당황해하며 나가버린다.
결과적으로 수업 중 느닷없이 들어온 학교관리자는 인권교육의 훌륭한 예시가 되어버렸다. 혹시 나의 인권수업을 도와주기 위해 들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인사하고 돌아가려는데 그 관리자가 불러 세우더니 차 한 잔 하잔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도 민망했던지
"아까 시작 전에 이념교육 이야기 한 것은 농담이었고, 수업 중 들어간 것은 외부강사들이 학생들 지도 잘하는지, 교육과정은 아이들 수준에 맞게 하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가끔 들어가는 것이니 오해 없었으면 합니다."
' (웃으며) 네. 이념교육 이야기는 저도 농담으로 흘려들었는데 또 이야기하시는 것 보니 본심이셨나 보네요. 그리고 외부강사지만 저도 교사인데 이렇게 교권 침해하는 것을 보면, 교사가 아닌 외부강사가 들어올 땐 더 하셨겠네요. 그리고 그 외부강사들은 끄응 하면서도 말도 못했을 거고. 혹시 이 학교 선생님들의 수업에도 무시로 드나들며 방해하는 건 아니시죠? 수업이 보고 싶고 관리자로서 장학권을 행사하고 싶으시면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고 보시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하고 나오는데 뒤통수가 따끔하다.
아마 그 분은 " 저런 놈 누가 불렀어?" 하겠지.
학생인권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사와 관리자들의 인권의식을 높이는 게 훨씬 중요하다.
교원의 낮은 인권의식은 직업적 특성상 아이들에게 인권의 잣대로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의 교권을 제일 먼저 지켜줘야 할 관리자에게는 더욱 높은 인권감수성이 요구된다. 학교 내 인권옹호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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