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누리 뉴스레터

오동선교사의 학생인권 이야기

인권누리 2021. 4. 21. 09:44

인권 감수성

 

흔히 인권감수성이란 사회의 불합리성, 관행이나 제도 등을 인권의 차원에서 판단해보고 풀어갈 수 있는 감수성을 이야기한다.

인권의 문제는 지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인권감수성을 가지고 있느냐와 그렇지 않느냐는 사회변화에서 매우 큰 차이를 나타낸다. 페미니즘, 성소수자, 장애인, 아동청소년,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각각의 사회문제들이 불거질 때 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할 당시 국민의 당 국회의원이던 이언주는 폭언과 막말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것이 논란이 되자 곧바로 사과를 하긴 했지만 국회의원이라는 사회지도층이 가진 낮은 인권감수성의 민낯을 보는 것이어서 매우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생산수단은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파는 것이고, 자신의 노동력이 정당한 가지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단결하고 협상하며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을 하는 것이며, 그 권리는 전 세계적으로 상식적으로 보장받고 있고 우리 헌법에서도 정당하게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파업은 누군가의 불편을 초래한다. 하지만 불편하라고 파업을 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벌어진 파업이라면 그 불편함을 막을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는 것이다. ‘왜 노동자들과 협상하지 않느냐? 왜 극단적으로 노동자들을 파업까지 내몰았느냐? 어서 빨리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라.’ 라고 사용자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힘없이 내몰리고 자신의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어느 것이 정의로운가?

인권감수성은 사람의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측은지심의 발로가 아니라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에 해당한다.

 

인권감수성의 문제는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지난 201843일 충남도의회는 충남도의회에서 자유한국당 주도로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었다. 인권규범의 하나인 지역인권조례가 폐지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소수자 인권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폐지의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인권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단골 메뉴였던 인권선언의 차별금지 사유 증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였다. 충남인권조례의 폐지는,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했던 때처럼 성소수자 혐오조직들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됐다. 반면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횡포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조용하다. 침묵하는 다수의 방관에 힘입어 혐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차별금지법,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일관된다. 바로 침묵이다. 차별금지법을 공약했던 참여정부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참여정부를 계승한다면서 인권문제에선 오히려 후퇴했다. 한국정부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하라는 국제인권기구들의 권고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수년 째 반복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성적지향이 각자 취향의 문제인지 치료해야 할 질병의 문제인지 입장차이는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대의는 사라지고 이전투구의 깃발만 펄럭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87월 나토정상회의가 벌여졌던 브뤼셀에서 영부인들의 모임에서 멋진 드레스를 뽐내는 영부인들 사이에 한 남자가 눈에 띈다. 어느 여성 정상의 배우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비에르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의 동성 배우자 고티에르 데스티네이다. 자비에르 베텔 총리와 고티에르 데스티네이는 지난 2015년 결혼했다. 두 사람은 2010년부터 교제했고 베텔 총리는 재임 중에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데스티네이는 외교 행사에 종종 배우자 자격으로 참석해왔었으며 영부인 모임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 화제가 된 것이다.

 

성적정체성에 관한 논쟁을 넘어 이미 동성결혼 및 동성부부의 자녀입양도 법제화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비하면 한국사회에서 성적정체성에 관련된 논쟁은 인권감수성의 측면에서 볼 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리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가해보자면 지난해 열린 나토 정상회의 배우자 기념사진에서 미국 백악관은 데스티네이의 이름을 빼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게재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고 이후 백악관은 뒤늦게 사진 설명을 수정해 데스티네이의 이름을 추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아이들에게 인권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할 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육교는 00가 다니는 길일까요?’ 라고 물은 뒤 혹시 불편한 것 없는지를 추가로 질문하곤 한다.

 

대개 아이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답한 뒤, 불편한 점은 없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답을 하지 못한다. 교실의 아이들이 대부분 비장애인이고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육교를 거의 보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인권감수성이란 혹시 불편한 것은 없는지, 불편한 사람은 없는지? 차별하는 시설이나 구조는 없는지 등을 살펴보고 공감하며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전주 소재 모 중학교에서 학생인권센터로 학생인권침해관련 신고가 들어왔다. 내용은 담임선생님이 한부모 가정과 저소득층 관련 학생 실태조사를 공개적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보를 받고 조사에 나선 조사관이 전후사정과 사실관계를 파악한 결과 이 교사가 교육청에 실태조사 보고공문을 받은 시간이 제출마감시간 직전이었고 공문 작성을 위해 긴급하게 조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잘못이라고 확인되었다.

백번양보해서 해당 교사입장에서 이 사건을 이해해보고자 한다면, 어쩌면 이 교사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길들여져 왔을 것이다. 공문은 반드시 제출마감 시간 전에 보내도록 압박을 받아왔을 것이고(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교감에 대한 인사평정을 지역교육청이 담당하고 평가기준 항목 중 공문보고기한 엄수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있던 과거에는 교감이 공문과 관련하여 교사들을 닦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 자연스레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인권은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결국 해당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특별인권교육이수와 신분상처분을 받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낮은 인권감수성은 인권침해의 도미노를 일으킨다.

특히 교육을 하는 사람들(교사나 학부모 등)의 낮은 인권감수성은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다. 학교관리자의 낮은 인권감수성은 교권침해를 불러오기도 하고, 교사의 낮은 감수성은 교실을 힘에 의한 통제로 길들여갈 수 있으며, 학부모의 낮은 감수성은 자녀를 인격체로 대하기보단 소유물로 대하거나 이기적인 자아로 성장시킬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하기에 인권의 문제는 어려서부터 학습되고 공감과 연대의 실천을 통해 길러져야 하는 것이다.

 

남을 돕는 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으며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