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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60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인권누리 2022. 6. 2. 11:05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62)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관성묘(關聖廟)입니다.

위치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159-9 번지에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는 신의의 상징으로 중국에서는 왕으로 추증되어 신성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성 혹은 관왕묘를 건립하여 일반 서민에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정유의 왜란 때에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관왕묘가 건립되었습니다.

1598년(선조 31) 처음으로 서울 숭례문 밖에 남관왕묘가 건립되었습니다.

『증보문헌비고』 권61 예고(禮考)에 따르면, 임진·정유의 난에 전투가 있을 때 자주 관왕의 영혼이 나타나 신병(神兵)이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고 했는데,

이것을 보면 명나라의 장수들이 관왕묘를 건립하는 데 힘쓴 것은 아마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관왕묘가 건립된 이듬해인 1599년에 또 하나의 관왕묘인 동관왕묘를 세울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동관왕묘 건립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선왕 선조는 정원(政院)에 보낸 비밀전교에서 새로운 관왕묘의 위치에 대해서 “전일에는 흥인문 밖에 건립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또 남대문에 설치한다고 하니 무슨 까닭이냐,

“남대문에는 이미 관왕묘가 있으니 동대문에 설치하도록 명나라의 섭정국(葉政國)에게 말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의 동쪽이 지리적으로 허(虛)하다는 도참사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선조는 끝내 동대문 밖이 안 된다면, 차라리 훈련원에 건립하여 무사들이 관왕의 정신을 이어받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 끝에 관왕묘는 동대문 밖에 건립되었습니다. 동관왕묘의 건립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공사의 규모가 너무 커서 백성과 군사를 부역시켜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동관왕묘는 3년 동안의 공사 끝에 마침내 1602년 봄에 준공되었습니다. 동관왕묘는 중국의 관왕묘를 그대로 본떠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울에 있는 남·동관왕묘 외에 지방에서도 관왕묘가 건립되었습니다. 1598년을 전후하여 지방에서는 강진·안동·성주·남원 등 네 곳에 관왕묘가 건립되었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관성묘는 관우 장군을 무신(武神)으로 받들어 제사 지내는 곳입니다.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사당은 <삼국지>로 우리에게 낯익은 관우 장군을 무신(武神)으로 받들어 제사 지내는 곳으로, 주왕묘(周王廟) 또는 관제묘(關帝廟)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관우를 신봉하는 신당이 널리 전파된 것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진린이 서울의 남묘에 관우를 조각한 신상을 안치한 데서 비롯됩니다.

전주의 관성묘는 고종 32년(1895)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金聲根)과 남고산성을 책임지던 무관 이신문(李信文)이 제안하여 각 지역 유지의 도움을 받아 건립했습니다.

사당 안에는 관우의 상이 있고, 그 양쪽 벽에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관우의 신성을 믿는 사람들은 매년 초 이곳을 찾아 한 해의 행운을 점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