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66)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순창 귀래정 입니다.
위치는 전북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538-1 번지에 있습니다.
귀래정(歸來亭)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는, 조선 세조 2년(1456년)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입니다.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귀래정은 조선 세조 2년(1456)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로, 지금 있는 건물은 1974년에 고쳐 지은 것입니다.
신말주는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습니다. 안쪽에는 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귀래정에는 신말주의 설씨부인과 신경준 관련 세거지·생가터가 있습니다.
설씨부인신경준선생유지(薛氏夫人申景濬先生遺址)는 조선 신말주(申末周)와 부인 설씨부인(薛氏夫人)을 비롯하여 신말주의 10세손 신경준 등 후손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곳입니다. 내용
설씨부인(1429∼1508)의 본관은 옥천(玉川)입니다. 설백민(薛佰民)의 딸로 이곳에서 태어났고, 후에 귀래정 신말주와 혼인하였습니다. 신말주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세조대 훈신 신숙주(申叔舟)의 아우입니다.
1416년(세조 2)에 벼슬을 버리고 부인과 함께 순창의 처가로 낙향했고, 이후 이들의 후손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았습니다.
설씨부인은 문장과 서화에 능하였습니다. 1482년(성종 13)에 강천사 불사(佛事)를 위해 쓴 권선문첩(勸善文帖, 보물 제728호)과 강천사를 그린 채화(彩畵) 14첩이 전해집니다.
신말주의 후손인 신경준도 이곳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은 1712년(숙종 38) 신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는 순민(舜民)이고, 호는 여암(旅菴)입니다.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학덕이 높았습니다. 신경준은 『여지고(輿地考)』의 편찬을 맡았고, 그 뒤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제주목사를 끝으로 벼슬을 그만두었습니다. 1779년(정조 3) 고향인 이곳 순창 남산대 옛집으로 돌아와 지냈고, 1781년(정조 5)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경준은 문신으로서보다는 지리학과 언어학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이름이 높습니다.
그는 『강계지(疆界志)』·『의표도(依表圖)』·『도로고(道路考)』·『산경표(山經表)』·『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 등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의 유집으로 『여암집(旅菴集)』이 있습니다.
귀래정의 외삼문인 일관문(一貫門)을 들어서면 왼편에 만재 고령신공당식 공적비(晩哉高靈申公植功績碑)와 오천(梧川) 신익휴(申翼休)공 공적비가 있습니다.
안채로 통하는 여견문(如見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혜당(慈惠堂)를 비롯하여 우측에는 남애정사(南厓精舍), 좌측에는 사당인 남산사(南山祠), 남산사창건기(南山祠創建記)의 비가 있습니다.
순창의 귀래정이 있는 남산은 신말주와 설씨부인 신경준 등 고령신씨의 세거지로 순창의 문화가 여기에서 꽃피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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