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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70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인권누리 2022. 8. 11. 13:39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72)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고창 전봉준 장군 생가터입니다.
위치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당촌길 41-8에 있습니다.

전봉준 장군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일반 민중들을 역사의 주역으로 이끌어 낸 인물입니다.
그는 민중이라는 아래로부터의 힘을 결집해 봉건 제도를 타파하고, 침투해 오는 일본의 자본주의적 진출을 저지하고자 했습니다.
전봉준 장군의 민중운동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국민이 주권자라는 위치를 자각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정신은 일본의 군사력에 좌절되었지만 그가 이끈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봉건 제도가 붕괴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고 민중을 각성시킴으로써 이후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지도자였던 전봉준 장군은 1855년 12월 3일 전북 고창읍 죽림리 63번지 당촌 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전장혁(기창)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무렵까지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서당, 안채, 사랑채 등이 있었으나 동학농민혁명 기간 중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전 장군은 오척 단신의 작은 체구 때문에 녹두라는 별명을 얻어 일명 녹두장군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지도부는 1894년 3월 20일(음)에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무장기포지에서 4,000여명의 농민군이 모인 가운데 갑오동학농민혁명운동 최초의 봉기선언문인 창의문을 발표하고 조직적인 항쟁에 들어감으로써 전국농민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적 지배세력에 의한 수탈과 억압에 반대한 민족운동이며 제국주의적 외세 침략에 맞선 국권수호운동으로 갑오개혁의 도하선이 되었으며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 세운 최초의 민중항쟁이었습니다.

 

생가터 남향으로 동쪽부터 부엌, 큰방,윗방, 끝방 순서로 되어 있으며, 부엌은 앞뒤로 두 짝의 널문을 달았고, 큰방과 윗방은 장지문을 통하며 연등천장입니다.
끝방은 곳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끝방 앞쪽은 담을 둘러 땔감을 두었습니다. 두 방 앞은 툇마루를 놓았고, 대문 동쪽에 화장실이 있으며, 집둘레의 돌담은 돌 사이에 회를 넣어 굳히고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었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가사가 적힌 표지석의 노래는 언제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본군은 푸른색 군복을 입고 있어 파랑새를 뜻하며 전봉준은 녹두장군이라 불리웠던 점으로 보아 녹두밭은 전봉준 장군 또는 동학농민군을, 청포장수는 백성을 상징하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전봉준 생가터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혁명적 사건인 동학농민혁명을 도모하고 이끈 최고 지도자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상징적인 장소로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4월 9일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