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116)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충남 금산의 칠백의 총 입니다.
위치는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216 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충남 금산은 한때 전라도에 속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칠백의 총은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 의사의 묘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 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 25년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18일에는 호남 순찰사인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권율 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습니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습니다.
그 후 선조 36년(1603)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1647)에는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현종 4년(1663), 이 사당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왔습니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횡당촌 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 선생과 무명의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여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이 비각에는 중봉 조헌 선생 일군 순의비의 파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과 승장영규 대사를 따라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 행적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 일본인 이씨까와 미찌오에 의하여 이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두었다가
8.15 해방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중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서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한 것입니다.
갈수록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잊자는 소리를 뒤로하고 임진왜란 당시에 순국한 조헌 선생과 칠백의 결기를 느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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