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됩니다.
기온이 좀 내려가는 날이 있어도 끈적이는 땀은 여전합니다.
일 년 중 불쾌지수가 가장 높은 시절입니다.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도 적도와 가까운 나라 사람들은 짜증을 달고 살까요?
여러 나라를 가보진 않았지만 남쪽나라 사람들 나름 낙천적이고 순박하며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덥고 습하면 ‘나 같으면 매일 짜증나고 싸울 거 같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내 생각’일 뿐입니다.
환경과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 입장’은 얼마나 객관적이며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일까요?
‘내’ 판단은 항상 틀릴 수 있고, 이미 틀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인사 담당부서의 팀장을 맡고 있다 보니, 상반기 직원 평가를 준비하고 자료를 받아 점검하는 일을 한 동안 바쁘게 했습니다.
누군가를 평가해서 줄 세우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일입니다.
모두 다 좋게, 또는 모두 다 나쁘게 할 수는 없는 등급별 배정 인원이 있고,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평정 결과를 보면서 “누구는 누구를 이렇게 평가하는구나.”하면서 그들의 속을 바라보는 제 속도 좋진 않았습니다.
서로의 감정, 평가의 기준, 상대방에 대한 태도 등을 전직원 평정 자료를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은 마이클 샌델이 쓴 <공평하다는 착각>입니다. 능력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 권력을 쥔 사람, 좋은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잘 해서’ 좋은 결실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소위 ‘능력주의자’들은 실패한 사람, 소외계층, 인기 없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 대해서 노력이 부족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없이 사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은 연대와 배려가 설 곳을 잃게 한다고 하네요.
운이 좋았거나, 사회적 환경이 좋았거나, 타고난 자질이 달랐거나, 가정의 경제형편이 좋았거나 누군가에겐 행운이 있었던 것인데, 모두가 똑 같은 조건에 있었던 게 아닌데,
소위 성공한 능력주의자들은 자기가 노력해서 좋은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오만하고 권위적인 지도층으로 군림하게 된다고 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가는 책이었습니다.
다시 회사로 와서 봅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를 했거나, 남들에 비해 좋은 때 입사를 했거나, 윗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퇴사했거나, 경쟁자들이 바른 소리를 하다가 승진에서 탈락했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본부장, 팀장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다고면 그들의 승진과 간부자격은 그야말로 “운칠기삼”에 가깝습니다.
실력이 3이라면 운이 7이었던 경우가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부들은 직원들 앞에서 자기의 과거를 멋지게 포장하고 실수와 오류는 덮어버리고 잔소리하고 평가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특히 이번처럼 전 직원 평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보니 인간 군상의 초라함과 가식과 꾸며진 권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저에게는 인사비밀을 발설하면 안 되는 의무가 있어 참으로 입이 간질거려 못 살겠습니다.
그래도 말하면 안 되는 이유는 못난 사람에 의해 평가받은 다수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못난 권위주의자 간부 몇의 추잡한 행태를 욕하고 나면 그들로부터 평가 받은 직원들이 느끼게 될 자괴감이 연상됩니다.
비밀유지의 의무도 의무이겠지만, 동료들에 대한 예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간질거리는 입에 뜨거운 차를 붓습니다.
운이 좋아서 이익을 본 사람들은 이런 말도 만들어냈습니다. 찍는 것도 실력이다.
시험을 치를 때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체크 하고 쉬운 것부터 풀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라면 어쩔 수 없이 찍어야 합니다. 비슷한 실력의 학생 중 누구는 찍어서 합격하고, 누구는 찍어서 떨어집니다.
그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찍는 것도 실력이라고 합니다.
엄격히 따지면, 5개의 지문 중에서 알쏭달쏭하게 1번과 2번 사이에서 하나를 찍는 경우는 3개를 가려낸 실력이 있겠지만 5개 중에서 찍어서 맞춘 것은 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를 확장하여 로또 당첨도 실력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또 당첨 확률이 800만분의 1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 ‘로또 당첨 확률’을 누르니 수도 없이 많은 확률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나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로또 당첨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숫자 조합으로 많이 사는 겁니다.
물론 된다는 보장은 지난 밤에 나온 조상님도 보장해 줄 수 없습니다.
샌델 교수는 위의 책에서 정치적 입장은 팩트체크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있고,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사실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주장할 뿐이라고 합니다.
요즘 TV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슈들을 생각해 봅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삭제, 시청료 분리징수 시행령 통과... 많은 사안에 대해 누군가는 팩트 체크부터 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팩트 체크 이전에 이미 누군가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등에 없고 사실과 상관없이 충분히 자기 이야기만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편을 향한 정치놀음에 많은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고 정치로부터 이탈됩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런 것이겠죠.
그러고 나면 정말 운 좋게도 누군가는 권력을 갖게 됩니다. 권력을 잡고 나면 실력으로 잡은 듯이 연대와 배려는 내팽개칩니다.
“여러분 내가 얼마나 국민을 사랑하는지 아십니까?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말에는 “여러분 내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더럽고 불결하고 못난 여러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열심히 표를 구걸했는지 아십니까?
국민(의 눈가림)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들릴 뿐입니다.
운 좋은 헛똑똑이의 국민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무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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