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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
정관성
“이 친구는 걱정 없을 거 같은 친구야. 직장 안정적이지, 부인 직장도 좋지. 텃밭도 하면서 노후 준비도 어느 정도 된 거 같고. 애들도 큰 문제없이 잘 자라는 거 같고. 큰 애는 벌써 서울로 학교를 가서 잘 지낸다며?” 이런 말을 친구들과 만났을 때 들었습니다. 그의 논거에 비추어 보면 참 걱정 없는 사람이 맞습니다. 먹고 살만 하고, 아이들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걱정거리는 없어야 마땅합니다. 제가 뭔가를 걱정한다면 복에 겨워서 괜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도 걱정이란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어머니는 매일 걱정을 하며 사셨습니다. 10리길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는 막내아들을 보면서, “애기 잘 데리고 댕겨라. 버스랑 기차 건널목 조심허고....” 고학년 누나와 집을 나설 때면 항상 어머니 입에선 걱정이 습관처럼 나오곤 했습니다. 농사를 짓고 사셨으니, 비가 와도 걱정,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 바람이 불어도 걱정, 새들이 날아와도 걱정, 농산물 가격이 내려도 걱정, 풍년이 들어도 걱정... 농사일보다 걱정거리가 많은 직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는 제 심정도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머니 유전자를 타고 난 때문도 있겠지만, 자식을 둔 부모들의 심정이 오랜 동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걱정으로 태어나서 걱정으로 죽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대부분의 걱정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80% 이상의 걱정이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것들에 대한 걱정이라고. 실제로 일어난 일들도 나중에 처리하고 보면 생각보다 큰 일이 아니었다고. 그러니 걱정일랑 하지 말고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합니다. 자기개발을 내용으로 하는 책에서도 항상 나오는 말입니다. 긍정적 에너지로 부정적 두려움과 주저함을 극복해야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다고. 이런 이야길 듣다보면, 부질없는 걱정에 휩싸여 살고 있는 자신이 아둔해 보이고, 긍정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는 것처럼 비춰질까 다시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부족한 자신으로부터 탈출할까요. 그들은 하나같이 생각을 정리하고, 사소한 걱정은 잠시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자기 일에 충실할 때 걱정은 멀리 달아날 것이라고. 정말 그런가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하는 말일까요? 좋아하는 일에만 흠뻑 빠져서 세상 걱정과 시름을 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혹은 정신으로 승리하고 걱정 없다며 외치면 그만일까요?
일본 오염수 방류 이야길 하려고 이렇게 길게 앞머리를 잡았더랍니다. 걱정입니다. 그것도 아주 큰 걱정거리입니다. 걱정에 분노가 더해져서 지속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듭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80% 이상의 걱정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니 맘 편하게 지내면 된다고 누군가 조언해 준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입니다. 혹은 우리 마음속의 긍정적 에너지를 더 끌어 올려서 괜찮으니 지켜보자고 해도 그 정도의 긍정적 에너지는 제 안에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정부인지 가늠이 안 되는 정부 당국자는 “과학”을 믿으면 걱정 없다고 합니다. 지금 걱정하는 것은 괴담을 퍼뜨리는 것이고, 괴담은 어민들과 수산물을 다루며 생계를 이어가는 국민들을 죽이는 짓이라고 합니다. 과학이란 이름의 포장지가 맞다면 좋겠지만, 괴담이라면 곧 그치고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면 좋겠지만, 그럴 거 같지 않아 더 걱정입니다. 과학은 그야말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어제 검증한 것이 10년 후에도 유효하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과학적 접근과 이로 인해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이 있다면 과거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고, 결국 과학적 검증의 내용은 바뀌게 됩니다. 인류의 과학 발전이 그렇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던 과거 오래된 과학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으로 바뀐 것은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최근의 일입니다. 3중수소가 나오지 않아 안전하다니요. 수백 가지 방사능물질이 터진 원자로에서 줄줄이 새어 나오고 있는데, 거기에 냉각수와 지하수가 뒤범벅이 되어 보관되고 있는데, 그 물을 한 번 필터링 한 물이 안전하다니요. 그 필터링한다는 알프스인지 뭔지는 정말 과학적 검증을 거친 것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보리밭을 지나면 소름이 돋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센병 환자가 아이들을 잡아다가 보리밭으로 끌고 가서 간을 빼먹는다는 괴담을 들었던 탓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센병 환자들을 차별하고 격리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괴담이었더군요. 괴담은 누군가가 어떤 목적인가를 갖고 세상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퍼뜨리는 허구의 이야기지요.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말이 제 귀에는 괴담으로 들립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허물을 감싸주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퍼뜨리는 괴담에 우리의 미래가 아찔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일부를 얻어먹고 사는 농부, 그리고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두려움과 싸우며 비린 생선을 잡아 우리의 식탁에 올려주는 어부. 우리는 오염수가 아니더라도 걱정이 많습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걱정 털어버리고 잘 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게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걱정되고, 새로 태어날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고, 생업을 이어가지 못할 사람들의 삶의 질곡이 걱정되고, 이렇게 간도 쓸개도 다 빼주고 뒷수습을 하지도 못할 멍청하고 사악하기까지 한 권력자들의 최후가 걱정됩니다. 때론 걱정은 걱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걱정의 근원을 뽑아내야 걱정이 해소됩니다. 오염수를 방류하는 자들과 그것을 옹호하는 자들이 근심의 원인 제공자들입니다. 이들을 무찌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걱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같이 걱정거리를 없애버리자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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