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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등 돌리세요.” |
최종수 신부
“신부님 등 돌리세요.”
일요일 새벽 형님 스님이 자전거를 타자고 합니다. 지금 가면 해는 솟아올랐지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합니다. 안전모와 선글라스를 챙겨줍니다. 저는 안장이 낮은 전기자전거를 타고 형님은 일반 자전거를 타고 출발합니다. 영랑호 자전거 길을 따라 갑니다. 호수의 아침 풍경을 보며 달리는 자전거도 행복합니다. 오르막을 숨 가쁘게 올라갑니다. 자전거 전용길을 따라 자전거가 달립니다. 파도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해변 길을 형님 스님과 아우 신부가 달립니다. 엄마 닭을 따라 가는 병아리처럼 형님 뒤를 따라 신나게 달립니다. 갯바위가 있는 곳에 잠시 쉽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갯바위로 갑니다.
“뭘 좀 잡았습니까?” 형님 스님이 상냥하게 낚시꾼에게 말을 겁니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풍경이 일출 햇살 속에서 낚시를 던지는 풍경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풍경보다 아름다운 윤슬, 일출 햇살에 일렁이는 바다 풍경이 눈이 부시게 들어옵니다.
자전거 도로 따라 다시 달립니다. 다음 목적지는 청간정입니다. 소나무 숲속에 자리한 정자입니다. 솔숲을 따라 정자로 올라갑니다. 옛 선인들이 한시를 짓고 읊으며 곡차를 나누고 한판 더덩실 춤을 추었던 정자입니다.
솔숲 끝자리에 북파공작원 부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민족이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 하는 현장입니다. 하늘은 한민족이 평화롭게 지내길 원하시는데, 일본과 미국에 의해 분단된 상처는 마음 한 켠을 아프게 합니다. 부대 아래 모래톱에서는 아영 캠프장이 있습니다. 다툼과 평화가 공존하는 우리 한반도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간정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친필이었습니다.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남한단독정부를 구성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킨 대통령, 하늘의 뜻을 거슬러 여순항쟁, 4.3항쟁 때 자기 국민을 수십만 명 학살한 지도자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현대사를 되새기며 청간정을 내려옵니다.
주차장에 꿀차와 꿀커피를 파는 아주머니가 외롭게 서 있습니다. 이심전심일까요? 내려오면서 꿀차 한 잔 팔아 주고 싶었는데, 형님 스님이 내 마음을 읽고서 말을 건넵니다. “마수 꿀차 두 잔 주세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형님스님의 넉넉한 마음이 꿀차보다 더 맛난 감동을 선물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리조트에 들러 사우나를 합니다. 탕에서 반신욕을 하며 바다를 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땀을 씻고 피로를 푸는 깊은 배려를 배웁니다. 목욕깔판에 앉아 비누로 몸을 닦습니다. “형님 등 밀어드릴게요.” 먼저 밀어 드리고 싶었는데, 내리 사랑이라고 형님이 “신부님 등 돌리세요.” 합니다. 큰형이 막둥이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 정성을 다합니다. “형님도 등을 돌리세요.” 그렇게 형님 스님과 아우 신부가 서로의 등을 밀어줍니다. 행복은 결코 큰 것이 아니라 작은 배려에 있다는 것을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깨닫게 됩니다.
리조트 야회 벤츠 앉아 잠시 숨을 돌립니다. 해가 중천인데 야외줄등이 힘겹게 햇살 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 줄등을 보면서 인간의 풍요와 과소비로 푸른빛을 깜빡이는 지구의 운명과 인간의 종말이 떠올랐습니다.
오는 길에 백반집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설악 투데이 신문 대표님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매번 지갑을 여는 것은 형님입니다. 대로변에서 조금 들어와 숨어 있는 백반집에서 맛난 아침을 먹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사우나까지 했으니 밥이 꿀맛입니다. 다시 해변가와 영랑호를 달려 보광사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5시경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를 다녀오신 김한기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5년 반을 원주민 선교를 하고 오셨습니다. 마지막 1년은 성당을 신축하셨습니다. 저는 1-2주에 카톡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사제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신다는 고백에 제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성당을 완공하고 축성미사를 드리고 오셔야 하는데. 기존의 제대, 감실, 독서대, 제대벽 십자가, 14처로 축성미사를 드린다 합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하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폐를 인쇄하는 독일제 특수 한지에 인쇄해서 판넬 작업을 한 14처, 독서대와 제대 부조조각품, 특수천에 인쇄한 제대 벽 다미아노 십자가를 제작해서 잠비아로 보내드렸습니다.
제게 있는 것은 하늘이 지상에 있는 동안 맡겨 놓은 것이기에 기쁘게 후원을 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하신 신부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회주스님 방에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러 나갑니다. 회주 스님은 저녁에 제사 예불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자동차로 가는데 회주 스님이 다가 오십니다.
“신부님 여기 차값 조금 담았어요.” 마치 큰 형님이 일찍 부모님을 잃은 막둥이를 보살피듯 그렇게 챙겨주십니다. 이런 배려와 사랑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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