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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51)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익산 여산동헌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동헌길 13번지에 있습니다.
여산은 전주의 초입으로 조선 태종 2년(1402)에 여산현이라 하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 여산동헌은 전국적으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시대 지방관청 건물의 하나입니다. 3단의 계단식 건물터 제일 상단부에 들어서 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벽과 방의 구조는 근래 일부 개조하여 본 모습은 잃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특히 추녀와 대청마루에서 한식 목조 건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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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동헌 느티나무』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16호 (2002.08.02)로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여산 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합니다.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의 ㅡ둘레는 4.5m, 높이는 22m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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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동헌의 담장 바로 아래에는 여산 백지사(白紙死)터 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원군 집정 때인 1866년부터 6년간 진행된 병인박해인 천주교 탄압 시절, 대학살이 감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 말살 정책으로 시작된 박해로 일찍 천주교가 전해진 여산 숲정이와 여산동헌 앞 백지사터에서 24명이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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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하여 질식사시키는 방법으로 일명“도모지사( 途貌紙死 )라고도 하며, 쇄국정책의 분노와 증오로 양심과 신앙의 자유가 질식한 곳입니다. 동헌 뜰에는 박해 사실을 증명하듯 대원군의 척화비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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