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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새기 |
정관성
독새기의 표준어는 둑새풀입니다. 벼과 식물로 모내기 전 씨앗을 맺어 논에 떨구고 추수가 끝나면 나기 시작해서 봄이 되면 논 전체를 뒤덮는 벼과 식물이죠. 열매는 부들을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 동그랗게 뭉쳐있고, 볼펜 심 굵기로 자세히 보면 앙증맞게 생겼습니다. 아마도 농촌에서 자란 분들은 모르는 분이 거의 없을 겁니다. 흔해도 너무 흔한 풀이니까요. 봄비가 내려 밭에 갔더니, 겨우내 갈아 놓지 않은 밭에 냉이가 하얗게 꽃을 피웠고, 땅은 독새기가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삽으로 파 놓아도 뒤집힌 상태에서도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아직은 그대로 뒀습니다. 나중에 4월 말이나 되면 고추, 참깨, 토란, 생강 등을 심기 위해 삽으로 좀 파 엎을까 생각 중입니다.
독새기는 제 어머니에겐 한숨과 배고픔을 연상시키는 풀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익산시-당시엔 이리라고도 하고 솜리라고도 부르던- 출신이었습니다. 수완 좋은 우시장 거간을 하시던 할아버지 덕에 비교적 부유한 집에서 쌀밥을 드셨고, 학교는 못 다녔지만 집에서 수를 놓고 살림 배우며 곱게 자랐다고 합니다. 제 친할머니는 가끔 정읍 감곡 근처로 약수를 받으러 외출하던 어머니한테 중매를 붙여 아버지와 결혼을 성사시켰습니다. 작은 아버지들을 익산 외할아버지 댁에서 하숙시키며 공부를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했던 모양입니다. 전쟁 후, 아버지는 아직 군인 신분이셨고, 어머니는 남편도 없는 집에서 새댁으로 외롭게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농촌이었지만, 쌀이 없어 거의 보리죽이나 독새기죽을 먹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할머니 댁은 그나마 논과 밭이 조금 있었지만, 현금이 귀하던 시절 쌀은 모두 현금으로 바꿨고 식량은 항상 부족했다고 합니다.
봄비가 내리고, 논에 독새기가 자라나면 어머니께서는 절로 한숨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보리쌀을 끓일 줄도 몰랐고, 논에서 자라는 풀을 뜯어다 곡식보다 풀을 더 넣고 끓인 죽은 가축에게나 먹이는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야말로 생활수준이 천지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독새기죽 마저도 할머니와 같이 살던 시누이와 시동생들은 부족하다며 더 먹을 게 없냐고 아우성을 치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배고픔과 설움의 간난신고의 세월이었다고 옛일을 회상하시곤 했습니다.
기억도 유전이 되나봅니다. 어머니의 한숨과 회한이 봄비가 내리는 날엔 제 마음도 아리게 합니다. 어머니가 드셨던 독새기죽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저를 이루는 일부로 전해졌나 봅니다. 가끔 독새기가 지천으로 난 논이나 밭을 보면, ‘나는 저걸 먹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고기, 햄, 달걀 등 입맛에 맞는 게 없으면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아들을 보면 할머니가 사셨던 세월의 가난과 배고픔을 말해주고 싶다가도 ‘아빠가 굶고 자란 건 아니잖아요?’라고 할까봐, 너무 꼰대 같아서 입을 다물곤 합니다. 대신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자는 구호단체의 호소영상을 보면서 한 마디 할 때가 있습니다. “저 아이들의 가난은 아이들이 선택한 게 아니잖아. 너희들의 풍족함도 너희들의 선택이 아니고. 운이 좋은 것뿐이야.” 얼마나 느끼고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그 말은 해야 할 거 같아서 하곤 합니다. 적어도 운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운이 안 좋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아량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독새기풀이 가득한 무논에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산소를 가득 머금은 빗물과 유기물을 실어온 물은 물고기를 흥분시키나 봅니다. 가을 추수 때 밟고 지나간 논흙에 생긴 발자국에 붕어와 미꾸라지 등이 숨어 있곤 했습니다. 특히 저수지와 붙어있는 논에는 겨우내 저수지바닥에서 숨죽여 있던 물고기들이 얕은 논으로 올라와 먹이활동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소쿠리, 양파망, 고무신 등으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흥분과 쾌감을 안겨주는 일이었습니다. 수만 년 이어진 인류의 수렵채취 본능이 깨어났습니다.
겨울에 말려뒀던 시래기와 민물고기를 넣고 잘 끓인 매운탕은 그야말로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닐 수 없었지요. 아마 독새기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엔 그 맛이 더했을 겁니다. 어머니께서는 민물매운탕을 아주 맛있게 끓이셨습니다. 봄 물고기는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그래서 더 정성 들여 끓이다보니 비법도 늘었을 겁니다.
봄비가 독새기 가득한 들에 추적추적 내립니다. 가난했던 시절의 어머니와 이웃을 생각하며 회한에 젖다가 물고기가 올라올 거 같은 생각에 흥분하면서 봄비를 바라봅니다. 이제 누구도 독새기를 먹지 않습니다. 먹지 않아도 누군가 독새기죽을 먹었고, 고난을 견뎠고, 지금의 풍요는 독새기죽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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