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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을 만들며 |
정관성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병아리 21마리를 받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끼리 페이스북으로 사귀다가 부화한 병아리를 나눠주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고마운 마음 반, 그냥 받아도 되나 싶은 부담스러운 마음 반으로 구이에 가서 병아리 아홉 마리를 받아온 것이 4월 둘째 주 토요일이었습니다. 다시 셋째 주 일요일에 열두 마리를 받아왔습니다. 약 2주 정도 큰 병아리 아홉과 부화한지 겨우 3-4일 된 병아리 열둘을 어찌 키울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틈틈이 닭장을 만들었습니다. 아직 다 만들지 못했지만, 골격은 거의 다 잡았고, 바닥에도 철망을 깔아 땅속으로 침투하는 동물을 막을 생각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시간, 닭장 문을 어떻게 만들지, 물통과 모이통은 어찌 만들지 혹은 살지, 보온과 비바람 막을 방법은 어떤 게 있을지, 대형 유기견이 공격하는 건 어찌 막을지, 이 궁리 저 궁리로 시간이 훌쩍 새벽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이 정도 정성으로 공부를 했더라면 대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년 전 봄에 달걀을 부화시켜 병아리를 키우겠다고 온도조절기 하나를 샀습니다. 약 1만5천 원 정도의 재료 준비로 누나한테 시골동네에서 구한 달걀을 사다가 부화를 시작했습니다. 온도조절이 잘 안 되었던지, 습도조절이 안 되었던지, 20여 개의 달걀 중 한 마리만 부화에 성공했습니다. 그 한 마리도 비실비실하다가 결국 나흘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달걀을 부화해서 닭을 키우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해 5월, 알 낳는 닭을 샀습니다. 백봉오골계 네 마리를 사다가 닭장에 풀어 놓고 즐거워했던 생각이 납니다. 열흘 후, 백봉오골계 네 마리 모두 짐승의 해코지로 잃었습니다. 네 마리 들여 놓은 닭장은 대나무와 코팅철사 망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철망이 온통 뜯겨 있었습니다. 사람이 한 일인지 의심스러워 경찰을 불렀지만, 경찰의 눈에 사람 소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대형 유기견이 주변에 많이 돌아다니며, 온갖 말썽을 피운다며 골치 아파했습니다. 어렵게 구한 닭이 달걀 11개를 낳는 동안 아이들과 가족 모두 많은 기대를 했던 만큼 상실감도 컸습니다. 가족들은 한목소리로 앞으로 닭은 키우지 말자였습니다.
한동안 닭은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페이스북에서 부화한 병아리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눌렀다가 훅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잘 키워봐?”라는 생각에 훅 들어온 분양 제안을 덥석 물고 말았습니다. 물론 가족들 모두 우려가 큰 상태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키우지만, 나중에 야외 닭장에 나가면 어찌할 거냐고 잔소리가 늘어납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잡담삼아 “닭이 쫓겨나든, 내가 쫓겨나든 둘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해요.”라며 최근의 조바심을 비칩니다. 특히, 이번 주 목요일엔 중간고사가 끝났다고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는 딸이 집에 내려옵니다. 조류공포증이 있는 애라서 더 신경이 쓰입니다. 당장은 닭장도 덜 만들어졌고, 어린 병아리를 야외에 내놓을 상황이 아니라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효과적으로 안전하게 병아리들을 야외에 내 놓을 생각에 또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퇴근 후 잠깐씩 가서 닭장을 손보고 올까? 대학 강의가 있는 화요일, 중간고사를 보니 일찍 와서 좀 손봐야할까? 수요일엔 회사에 손님이 오는데, 그 손님들만 접대하고 조퇴를 해서 닭장을 완성해야 할까? 그렇게 내보내고 나면 정말 안전이 지켜질까? 물음표의 연속입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4.3 항쟁,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 4.26 강경대 열사 피살일 등 우리 역사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참혹한 일들이 일어난 달입니다. 4월 내내 우울했지만, 병아리를 보면서 소위 “병멍”으로 병아리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많습니다. 집에서 짐승은 절대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어기고, 이제 열흘 정도 닭을 들여놓은 상황입니다. 세상에 완전히 절대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병아리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자니, 이전에 직접 부화시켰다가 보냈던 병아리 생각도 나고, 2014년 새파란 나이에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 생각도 납니다. 어린 생명들의 감동과 기쁨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닭장을 만들고, 어린 병아리를 키우는 일은 작은 병아리 공동체 하나를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먹을 것, 집, 환경, 위험 방지, 그에 더하여 행복한 일상을 조화롭게 일구는 것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이니까요. 제가 먼저 보냈던 병아리처럼, 제주에서, 마산에서, 서울의 경무대(당시 대통령실) 앞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은 공동체의 부조리, 무능, 악의적 선동 등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공부와 글쓰기를 농사일처럼 했으면, 대학자가 되었거나 지금보다 훨씬 명망 있는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대학자나 명망가를 꿈꾸지도 않는 사람한테 할 소리인지는 차치하고 저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나? 만날 밭에서 일하면서 삽으로 글 쓰고, 괭이로 이야기 만들어서 밭에다 심는다. 자잘하게 종이에 찍찍 긋거나 자판을 두드려 쓰는 글이 있고, 대자연을 상대로 몸으로 쓰는 글이 있다.”라고 둘러댔습니다. 병아리 키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아리 공동체를 잘 만들기 위해,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따스한 통치자가 되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정도의 정성은 있습니다. 4월의 역사를 바라보며, 4월의 선거를 돌아보며, 4월의 닭장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적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예전의 너덜너덜한 대나무 닭장이 아닌, 쇠파이프와 강한 철망에 추락방지 안전망으로 보강한 튼튼한 닭장이 되어 주길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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