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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66)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부안 봉래동천 암각서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239-10번지에 있습니다.
예부터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부안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부안군 청사 뒤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는 봉래동천 암각서는 조선 후기 명필 박시수가 새긴 바위 글씨입니다. 봉래 동천 암각서(蓬萊洞天巖刻書)는 박시수가 1810년(순조 10)~1813년(순조 13) 부안 현감(扶安縣監)으로 재임 중 부안 관아(官衙) 앞 진석루(鎭石樓) 반석에 남긴 글씨입니다. 넓게 펼쳐진 너럭바위 위에 커다란 글씨가 초서체(草書體)로 새겨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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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동천(逢來洞天)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逢(만날 봉), 來 (올 래), 洞(골 동), 天(하늘 천)이라는 글자입니다. 봉래동천(蓬萊洞天)은 커다란 바위에 두 자씩 위에서 아래로 새겼는데 오른쪽이 봉래, 왼쪽이 동천입니다. 글씨의 크기는 가로 404cm 세로 523cm이며 한 획의 굵기는 약 15cm로 매우 큰 글씨입니다. 예로부터 방장산, 영주산, 봉래산은 신선들이 산다는 상상의 산으로 상신산이라 하는데, 부안에는 봉래산, 봉래루, 봉래구곡 등 여러 곳에 봉래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봉래동천이라 새겨 놓은 것은 부안은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을임을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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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글씨가 집중된 상소산 아래 서림(西林)과 금대(琴臺) 그리고 혜천(惠泉)등 경물 지칭의 바위 글씨는 부안 출신으로 여류시인이자 관기(官妓)였던 이매창이 교우했던 인물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 것입니다. 부안이 풍류와 선비정신이 교융(交融)된 지역 명소이자 정원 후원으로서의 역사성을 배태한 장소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위 글씨의 대부분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각자 된 것으로, 총 34건 중 경물(景物) 관련 4건, 경색(景色) 관련 8건, 인명(人名) 관련 5건 그리고 시문(詩文) 15건, 기타 2건 등으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시문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으며, 시문 속 주제어의 중심에는 상소산과 혜천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봉래동천은 물론 소산사호(蘇山四皓)의 표현이나 연단로에서 제조된 신선의 단약에 비견되는 혜천의 샘물은 신선 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누적되고 관성화되어 착근된 장소정체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경관어휘이자 봉래동천, 주림과 옥천 바위 글씨의 조합과 조응하는 것으로 이 일대가 신선의 세계임을 상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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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11년(1845년) 현감 조연명의 인위적인 식수 이후, 체계적으로 가꾸어온 숲인 서림과 숲에 조성된 정각 서림정과 주변에 산재한 혜천·금대 등 바위 글씨가 새겨진 암반 등은 신선 사상이 깃든 관아(官衙)의 후원이자 임천정원(林泉庭苑)으로서의 성격과 면모를 보여주는 흔적이며, 이곳에 깃든 장소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또한 낙토(樂土), 부안의 중심인 관아지역과 풍류 시회처(詩會處)로서 후원 혜천 지역은 선계 동경적 아취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공간으로 구현 정착된 것으로 상소산과 서림 그리고 동천과 혜천의 관련성과 상징성이야말로 이곳 장소정체성의 본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림 공원 일대의 바위 글씨를 중심으로 한 문화유적은 부안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부안읍을 대표하는 역사문화경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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