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깨를 심으며 |
정관성
지난 주말 참깨를 심었습니다. 참깨를 심고 밤에 비가 내려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참깨가 잘 나면 다시 솎아 주고, 북주고, 풀 관리 해주며 기다리면 됩니다. 여물면 베어서 털면 그만이죠. 두 문장을 쓰고 보니 참깨 농사를 다 지은 거 같습니다.
1994년 여름이 생각납니다. 김일성이 7월 초순에 사망하자 말년 병장으로 제대를 앞두고 있던 저로선 난감했습니다.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장의 포화 속에서 죽어갈 수도 있겠단 생각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다행히도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으나, 지독한 더위가 한반도를 뒤덮었습니다. 당시로선 최악의 더위라고 난리였습니다. 더위와 공포를 뒤로 하고 7월 말 군대를 제대했습니다.
8월 중순이 되자 농사짓던 집에선 참깨를 베어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새벽 4시만 되면 깨우곤 하셨습니다. “시원할 때 일하고, 더울 때 쉬어라.” 이론상으론 맞는 말이지만, 낮엔 정말 잠이나 휴식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덥고 끈적거렸습니다. 며칠 동안 참깨를 베고, 아버지께서는 잎을 떼어 묶고, 어머니께선 포장에 떨어진 참깨를 정리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지어서 한 놈이 먹는 것이 참깨여.”라고 아버지는 일하는 중에 참깨 농사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하셨습니다. 분명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보다 더 조상 때부터 참깨 농사는 “열 사람 지어 한 놈 먹는” 농사로 불렸을 겁니다.
사실 참기름이나 깨소금이 없어도 음식은 먹을 수 있습니다. 풍미를 더하고 고소함을 더하는 역할 정도가 참깨의 역할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귀하던 시절 참깨 농사를 지어 기름지게 먹는 것은 “한 놈”을 위한 것이었던 거죠. 땅 많고, 돈 많고, 여러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참기름과 참깨를 소비했을 겁니다. 농사짓는 “열 사람”과 “한 놈”이 대비되는 이유겠지요. 옆 밭에서 관리기를 빌려 참깨 이랑을 만들고자 했으나, 그마저도 고장이라고 해서 손수 삽으로 이랑을 파고 비닐을 씌웠습니다. 열 사람 몫의 일을 저와 아내가 감당했습니다. 돈을 줘도 사람을 쓸 수 없는 농촌이라고 하고, 텃밭을 짓는 저로선 인부를 살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어지간한 농사는 지을 수 없다고, 계절노동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이 많은 농촌현실입니다. 그들이 “열 사람” 몫의 일을 하는 것이지요. 몸에 좋다고 국산 참깨와 참기름을 소비하는 “한 놈”은 누구일까요? 농촌의 현실은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농사일로 숨돌릴 틈이 없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농사짓는 저로선 주말이나 휴일이 아니면 정말이지 속수무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계가 아니니 잘 되어도 그만, 망쳐도 그만입니다. 생계로 이어가는 농민들은 외국인노동자의 손을 빌어 농사를 짓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한 놈”의 지위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기름의 고소함 뒤에 숨은 땀내와 노동을 생각해 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