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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68)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정읍 영주정사 및 영양사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현암2길 40번지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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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정사(瀛州精舍)는 1903년 조선 후기 유학자인 창암 박민환 선생이 약 1만 여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지은 강당입니다. 영양사는 주염계, 정명도, 장횡거, 소강철, 주자와 기자,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중국의 5성 6현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1909년 지은 사당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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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안에는 원래 어진화가 채용신이 그린 5성 6현의 초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진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영주정사는 등록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영주정사에는 간재 전우 선생이 쓴 '영주정사' 현판이 있습니다. 또한 공경할 경(敬)자를 새겨넣은 축대와 '학구성현 연비어약(學求聖賢 鳶飛魚躍)' 현판이 있습니다. 이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나 새나 물고기가 스스로 터득하여 날고 헤엄치면서 제 갈길을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의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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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정사는 구파 백정기 의사가 간재 전우 선생에게서 유학을 공부한 곳입니다. 영주정사에서 간재 전우 선생의 후학들과 교류하며 조선 독립운동 정신을 기른 것입니다. 구파 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1919년 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자 운동과 일본상품 배격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시설물 파괴 공작과 요인 사살, 친일파 숙청 등 항일운동을 하였습니다. 1933년 상하이 홍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주중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법원에서 무기형을 받고 복역 중 6월 5일 지병으로 순국하였습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백정기 의사의 유해는 서울 효창공원에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삼의사 묘역에 함께 묻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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