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79)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남원 용장서원과 양대박 부자 충의문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530번지에 있습니다. 남원 양대박 부자충의문(梁大撲 父子忠義門)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있는 조선 중엽의 충신 양대박과 그의 아들을 추모하여 1796년에 세운 정려문입니다.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7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
양대박(梁大樸, 1543년 ~ 1592년)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으로 자는 사진, 호는 송암과 죽암, 하곡, 청계도인, 시호는 충장입니다. 양대박 장군은 학관 출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털어 의병 50명을 모아 전라도 담양의 고경명과 합류하여 군사를 동원하였습니다. 진주에서 의병 2000명을 모았으나 의병 모집 때의 과로로 진산의 진중에서 객사하였고, 사후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증하였습니다. 양대박은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모은 의병을 지휘하여 운암전투에서 왜병을 격파하였고, 그의 아들 양경우는 군량미를 모아 명나라 군대에 제공하였습니다. |
|
양대박부자충의문 건물 앞면에 팔각으로 다듬 은 돌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며, 건물 안에는 양대박 부자가 행한 충절의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 들어있습니다.
양청계는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고, 특히 그가 지은 임란왜란의 창의격문(倡義檄文)은 문장의 유려함과 기개의 고결함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청계집(靑溪集)』과 『창의록(倡義錄)』을 왕명으로 간행케 하고 조정에서 보관하게 하였습니다. 그 유적으로는 “부자충의문”과 청계집, 양대사마실기 등과 만여편에 이르는 한시가 있었다고 하나 유실되고 현재는 200여편이 남겨졌다고 합니다. |
|
양대박 장군의 묘소는 남원시 왕정동 한우물 마을 북편 남원양씨 선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부자충의문은 조선 중엽의 충신 양대박과 그의 아들을 추모하여 1796년에 세운 정려문이다. 양대박은 임진왜란때 남원에서 모은 의병을 지휘하여 운암전투에서 왜병을 격파하였고, 그의 아들 경우는 군량미를 모아 명나라 군대에 제공하였다. 건물 앞면에 팔각으로 다듬 은 돌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며, 건물 안에는 양대박 부자가 행한 충절의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 들어있다.
용장서원(龍章書院)은 고려 목종 때 김치양 일파의 난으로 은거한 절의의 충신 양능양(梁能讓)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고려 때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양주운(梁朱雲)과 고려 후기에 대사성을 지낸 김구용(金九容), 임진왜란 때의 공신 양대박(梁大樸)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매년 음력 3월 17일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