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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80)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임실 필봉문화촌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강운로 272번지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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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을 말합니다.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호남좌도 농악의 하나로 곡성농악(谷城農樂), 남원금지농악(南原金池農樂)과 함께 남원 상쇠 전판이(田板伊) 계보에 속합니다. 필봉마을에는 예로부터 당산굿 · 마당밟이 정도의 단순한 농악이 전승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을 보유하게 된 것은 1920년경에 상쇠 박학삼을 마을로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필봉농악대는 큰 기 1, 영기(令旗) 2, 나발 1, 대포수(大砲手) 1, 창부(倡夫) 1, 조리중 1, 양반 1, 각시 1, 무동(舞童) 2, 농구 1, 화동(花童) 1, 쇠 3, 징 2, 장구 3∼5, 북 2, 벅구 7∼15 등 40여 명으로 구성됩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농악의 종류로는 섣달 그믐날 벽사진경을 위한 ‘매굿’, 정월 초사흘이 지나 각 가구의 축원안택(祝願安宅)을 위하여 집집이 돌며 치는 ‘마당밟이’, 정월 아흐렛날 밤에 당목(堂木) 앞에서 올리는 ‘당산제(堂山祭)’, 대보름날 노디(징검다리)에 금줄을 감아 놓고 치는 ‘노디고사굿’, 역시 대보름날의 ‘찰밥걷기농악’, 대보름이 지난 뒤 마을의 공공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다른 마을에 가서 치는 ‘걸궁굿(걸립굿)’이 있습니다. 또한 여름철 만두레(세벌 김매기) 때의 ‘두레굿’, 그리고 ‘마당밟이’ · ‘걸궁굿’ 등 규모가 큰 농악을 친 후 마지막날 밤에 판을 벌이고 기량을 보여주는 ‘판굿’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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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농악대는 징과 북의 수가 적고 잡색(雜色)이 두루 잘 갖추어져 있으며, 개개인의 기교보다도 단체의 협화(協和)와 단결을 중시합니다. 쇠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며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고, 또 채굿과 짝드름, 영산가락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호남좌도 농악이 가진 일반적인 특징에 해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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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농악의 특징은 농악수들 모두가 상모를 쓰지 않고 쇠잡이만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는 점, 판굿 속에 수박치기가 있다는 점, 군영놀이 · 도둑재비 · 탈머리의 진행방식에 독특함이 있다는 점, 그리고 영산가락이 가진영산 · 재능기영산 · 군영놀이영산 · 다드래기영산 · 머지기영산 등으로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1988년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기예능 보유자로는 양진성(상쇠)가 있습니다.
필봉문화촌은 붓을 닮은 필봉산 아래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푸진 삶을 살아온 소박한 사람들이 400년 동안 신명으로 굿을 지켜온 넉넉하고 흥이 넘치는 곳으로 전설이 된 풍물굿을 축제로 만들고 아버지의 업을 천직으로 이어가는 노동과 생활의 근심을 신바람으로 바꾸는 곳을 필봉문화촌입니다. 필봉농악 발상지로서의 위상 정립과 우리전통문화의 전승 교육 전시체험 공간을 두루 갖춘 특성화된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필봉농악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풍물전시관과 다양한 전통문화체험이 가능한 필봉한옥스테이(취락원)를 중심으로 농악경연대회, 문화관광상설공연, 한옥자원 활용, 야간 상설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위한 야외공연장은 물론 내방객들의 편의시설 및 주차공간 굿카페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매주 토 일요일에는 농악놀이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전통문화의 멋과 흥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해마다 3만여 명 이상이 필봉농악을 배우거나 체험 관람하기 위해 필봉문화촌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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