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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한 해> |
정관성(원광대)
점심시간에 닭장에 갑니다. 닭장에 가서 알을 꺼내고, 닭 모이를 주고 옵니다. 집에 알을 갖다 놓고 저도 점심을 간단하게 먹습니다. 오늘은 두 알, 어제도 두 알, 그제는 다섯 알 암탉은 마음대로 낳아주고 저는 ‘이게 어디냐?’라며 고맙게 주워 옵니다. 참으로 알찬 한 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가 점점 짧아지면서 11월부터는 도저히 퇴근 후 갈 수 없었습니다. 어두워진 후 방문하면, 닭들이 모두 홰에 올라가 있다가 놀라고 흥분합니다. 모이를 주고, 구멍 난 곳을 살펴야 하는 임무 수행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에 닭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던 직원들이 있습니다. 해가 길 때엔 점심을 인근 식당이나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 먹고 닭장엔 퇴근하고 갔으니, 점심시간은 대체로 여유로웠습니다. 점심 동료들은 “닭을 먹이느라 사람이 못 먹는 거야?”라며 요즘의 제 생활패턴에 대해 우려의 말을 전합니다. “닭은 팀장님한테 어떤 존재죠?”라고 묻는 직원도 있습니다. 혹시 닭이 사람의 상전이냐는 뜻이냐 물었더니, 그냥 닭을 키우는 의미를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초순, 페이스북에서 알고 지내던 분이 병아리를 분양한다고 했습니다. 식당 식기 소독기를 개조해서 부화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좋아요” 응원에 더하여, 이전에 텃밭에 닭을 키우다 실패한 이야기를 댓글에 달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구이에 살고 계시는 페친은 부화되면 병아리를 분양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연락이 와서 12 마리를 받아 왔습니다. 2주 후에 또 연락이 와서 9 마리를 더 받아 왔습니다. 베란다에 박스와 전등으로 병아리집을 만들고 물과 모이를 주며 돌봤는데, 병아리는 정말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4월 마지막 주말에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큰딸이 집에 온다고 했습니다. 조류공포증이 있는 애라서 빨리 닭장을 완성하여 병아리를 밖에 내보내야 했습니다. 회사 조퇴까지 하면서 열심히 닭장을 만들어 밖으로 내고 닭장 안에 박스, 비닐, 전등으로 보온을 하고는 며칠 동안 불안해서 제대로 잠도 못 잘 정도였습니다. 그물망을 쥐가 뜯어 놓아 두 마리가 탈출을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마리는 그물망과 판에 끼어 탈진하여 죽었습니다.
21마리 중 3 마리를 잃고, 18 마리의 닭을 추석 지나서까지 거의 매일 찾아가며 키웠습니다. 서울로 출장을 가는 날이면 전날 모이를 많이 주고, 풀잎과 야채를 듬뿍 주고 가곤 했습니다.
추석이 지나 닭이 알을 낳았습니다. 그야말로 감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0월이 되어 살펴보니 18마리 중 수탉이 11 마리였습니다. 양계장에서라면 병아리로 마감했을 수탉들이 다 큰 성계가 되어 소수의 암탉들을 괴롭혔습니다. 수탉 수를 줄여야 했습니다. 한 마리는 마을 노인에게 팔고, 여섯 마리는 큰 순서로 잡아먹었습니다. 지금은 암탉 일곱에 수탉 네 마리로 그나마 성비가 약간 맞지만, 아직도 수탉 두 마리는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수탉은 한 마리나 두 마리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조만간 큰 수탉 두 마리가 유명을 달리 할 수도 있겠네요. 닭은 제게 가축입니다. 애완용 닭을 키우는 분도 있지만, 저는 닭을 처음부터 애완용으로 키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잘 키워서 건강하고 맛있는 닭을 잡아먹을 생각이었고, 영양 많은 달걀을 얻어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집과 회사에서 먹지 않는 야채와 음식물을 갖다 줘서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는 일이 닭에게는 고루 먹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안전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닭에게 모이를 주러 다닙니다. 제가 키우는 동안 닭에게 할 수 있는 걸 해 주고 싶습니다. 안전하고 춥지 않은 닭장, 다양한 먹이, 봄이 되면 달걀을 품을 수 있는 둥지 등 가축에게 해야 할 제 임무가 있고, 책임을 느낍니다.
어떻게 자기가 키우던 닭을 잡아먹을 수 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찌 보면 참 잔인하고 비열한 인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병아리부터 애지중지 키우던 닭을 잡아먹는 걸 보면 참으로 피도 눈물도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봐도 제 손으로 닭을 죽여 그 살을 삶아 먹는 행위는 요즘 분위기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비난한다면 달게 받을 생각입니다. 다만, 한 해 동안 우리 국민이 먹는 10억 마리의 닭들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보다 제가 키우는 닭들은 훨씬 존중 받으며 살다 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양계장에서 쓰레기처럼 던져진 수평아리보다 제 닭장에서 다 성장하여 암탉을 호령하고 목청껏 울어본 수탉이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닭과 저는 가축과 가축을 키운 존재로 엮인 관계에 있었던 점에서 저로선 죄책감을 느껴 마땅합니다. 죽어간 닭들과 앞으로 죽어갈 닭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저는 닭에게 모이와 닭장을 제공하고, 닭의 살과 알을 취했습니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일자리와 임금을 주고 생산물을 팔아 이득을 취했습니다. 그걸 잘 하면 큰 기업을 이루고, 못 하면 기업은 망하기도 합니다. 인류가 닭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저와 닭의 관계는 오래 계속될 것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같이 지내는 과정에서의 존중은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말입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해고된 사람이 있습니다. 추위에 떠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쉽게 먹고 쉽게 버려도 되는 통닭집의 닭뼈다귀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웃에게 우리 모두가 연대책임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도 존중과 보람이 있는 알찬 연말연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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