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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가 부러진 나라, 미국 |
백승종(역사학자, 서강대 명예교수)
알림: 이 글은 2022년 1월 8일에 쓴 것이므로, 이미 낡은 글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윤가가 일으킨 12.3 내란 사태가 실은 트럼프가 배후에서 획책한 미 의회 습격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집니다. 윤가의 내란 사건은 박정희의 10월 유신과 전두환의 5.18 그리고 트럼프의 의회 습격 사건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사건이었습니다. 역사가인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한 인식의 틀 안에서 아래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년전이었습니다. 2021년 1월 7일(한국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천 명의 성난 군중이 의회를 습격했습니다. 그들은 의회 경비의 제지를 무력으로 돌파하고 의회 안으로 쳐들어가 난동을 벌였습니다. 그때 미국 의회는 조 바이던의 대선 승리를 승인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중의 난입으로 말미암아서 급히 회의를 중단하고, 다수 의원이 방청석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들은 소요가 끝날 때까지 숨어서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사상 초유의 의회 침입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난동의 배후에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난동 사건을 일으킨 군중들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단호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합니다. 미국 공화당의 저항을 약체인 미국 민주당 정부가 뚫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기는커녕 그날의 폭도들은 의혼 난입 사건 1주년을 맞이하여, 영광스러운 거사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정말 가관입니다. 백악관에서 쫓겨난 트럼프는 여전히 '위대한 미국'의 꿈을 이루겠다며 차기 대선에 재출마할 기세입니다. 별 다른 일이 없으면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가능성도 큽니다. 미국 정치는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위험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선거의 의미가 상실되어, 정상적인 정권 교체조차 어렵게 된 듯합니다. 대중 매체가 많으나 여론이 제대로 수렴되지는 못하고,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요. 알다시피 미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지식인이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많아요. 최고 수준의 교육기관도 즐비하며, 교양 높은 시민들도 수십만 명을 헤아립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제 좁은 소견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 점에 문제의 근원이 있어보입니다.
첫째,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중하층에 속하는 대다수 미국 시민의 교양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유튜브와 트윗터 등 SNS에 범람하는 거짓뉴스에 쉽게 속아넘어갑니다.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늘 조종되고 선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법과 제도가 낡아도 너무 낡았습니다. 지난 번 그들의 대선에서도 확인한 사실입니다. 대통령 선거법 하나만 보아도 미국은 참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에 얽매여 있습니다. 철저히 양당제 위주인데다 그마저도 합리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셋째, 자본주의의 성지(聖地)답게 말입니다. 미국에는 자본의 힘을 견제할 장치가 하나도 없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 기관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조종 아래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미국 최고의 인재는 모두 자본의 핵심기관에 종사하고 있고요. 그래서 나라를 이끌만한 굵직한 대통령감, 유능한 상하원의원도 말하자면 2류 또는 3류 자원 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들까지 자본에 완전히 종속되어, 일반시민의 의지를 배반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다수 시민은 자국의 입법, 행정 및 사법 제도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시민들은 반(反) 사회적인 성향을 키우고 있어요. 하지만 미국의 소수 지배 엘리트는 이처럼 위험한 사회적 변화를 함부로 무시합니다.
미국의 지배층은 낡은 제도와 모순된 관행을 내버려 둔채, 언제까지나 미국 사회를 지금의 모습대로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2021년에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과연 21세기의 골치덩어리로 전락한 미국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까요. 그는 분열된 미국사회를 통합하고, 미국의 현대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바이든은 자본의 손아귀에 갇힌 미국이란 나라를 해방할 수 있을까요. 많은 의문이 제 가슴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지난 일년 동안의 행보로 미루어 볼 때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실패한 정치가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아요. 그는 재선에 성공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에게는 개혁의 야망도 없고, 추진력은 더더욱 미달합니다. 미중 갈등도 더욱 악화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이란 그리고 우크라이나 등에서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미국을 대신해서 세계 최강의 지도적인 역량을 갖춘 나라가 부상할 가능성이 적지요. 그러나 역사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에서 많은 혼란이 연출되기 쉽습니다.
오늘날의 미국은 완전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국을 최고의 나라로 여기며 추종하기에 여념이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들은 미국을 베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국운이 상승하는 지금, 이게 될 일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2022. 1. ) 과연 3년 전에 제가 감히 예측한 대로 바이든은 재선에 성공하지 못하였고, 트럼프는 다시 집권하였습니다. 운이 좋아서 제 예측이 맞았을까요? 그것은 아마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한국사회입니다만, 미국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상층 계급이 미국을 모방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고, 실제로 지배층의 상당수가 미국에 유학하였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미국과 한국의 유사성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에는 유교사회의 유산이 아직 남아 있어서 미국보다는 여러모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가가 트럼프를 흉내냈으나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미국보다는 한국시민의 정치참여 의식이 훨씬 높고, 조직력도 몇 배 더 탄탄합니다. 그러므로 유교사회의 전통을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닙니다. 유교 덕분에 우리사회에서는 지식인 또는 교양시민 모두가 현실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지배층의 비리와 불법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유서 깊은 문화를 향유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유교적 전통은 박정희도, 전두환도, 윤석열도 이겨냅니다. 당연히 우리사회는 트럼프 같은 괴물의 등장을 거부합니다. 여기에 조선식 유교 사회의 긍정적 유산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전통이 끝내는 동학과 같은 새로운 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러한 문화사적 흐름 속에서 키세스단이 출현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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