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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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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로 81-13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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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특별자치도 완주역 근처에는 흥미로운 예술 공간이 있습니다.
‘디지인뮤지엄’, ‘목공소’, ‘책공방’, ‘북아트센터’, ‘미디어아트갤러리’가 한 동네를 이루는 삼례문화예술촌입니다.
100년 전까지 쌀 창고로 쓰였던 공간입니다.
시간이 지나 이 곳간에는 쌀 대신 보물 같은 예술품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창고도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습니다.
물론 공간을 넘나들며 예술 체험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삼례문화예술촌에 새겨진 우리네 아픈 역사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장소입니다.
완주군 삼례역에서 세계막사발미술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옆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도 있습니다.
그에 앞서 오른쪽 샛길로 빠지면 삼례문화예술촌입니다.
원래는 쌀이나 곡물 등을 보관하던 창고 자리었습니다.
지금은 '갤러리', '책방', '북아트센터', '목공소', '카페' 등이 모여 예술마을을 이뤘습니다.
광장을 몇 개의 건물이 둘러 안은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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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짓고 허무는 게 아니라 희로애락의 모든 자취를 촘촘하게 이어 붙인 시간이라는 것을 공간의 기억이 대신 증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삼례역은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기차역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기차역은 수탈의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쌀을 수탈했습니다.
만경평야의 쌀들은 기차와 차량으로 삼례에 도착했고, 삼례의 쌀 창고에서 머물다 다시 기차에 실려 군산역으로, 군산에서 일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쌀 창고는 1920년에 지어져 광복 때까지 일제의 수탈에 활용됐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새로 지은 2동을 합쳐 7동이 농협 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완주군에서 창고를 매입했고 2013년 6월에 문화예술촌을 꾸렸습니다.
삼례문화예술촌 입구에는 'samsamyeyememe '라는 간판이 있습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에서 위탁받아 운영합니다.
맞은편은 '비쥬얼미디어아트미술관'입니다.
녹슨 함석의 벽에는 '삼례농협창고'라는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예솔촌의 건물들은 마당을 빙 둘러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마다 다른 재료로 지은 건물들은 지난 100년 창고의 변천사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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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갑오농민전쟁)은 농부들과 동학도들이 잘못된 사회를 바로 잡으려 일으킨 저항 운동입니다.
삼례에는 동학혁명의 역사가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1892년 동학 최대 규모의 집회가 삼례에서 열렸고, 1984년 2차 농민 봉기도 삼례에서 일어났습니다.
삼례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순창으로 퇴각했습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 2차 봉기로부터 20년이 지난 1914년에 일본이 쌀을 수탈하기 위해 삼례역과 만경강 철교를 만들었습니다.
1920년에는 현재의 삼례문화예술촌에 쌀 창고가 지어졌습니다.
삽례읍 비비정 정자 아래쪽으로는 1927년에 준공한 만경강 철교가 남아있습니다.
만경강 철교는 1914년에 목교로 지어졌고 나중에 길이 476m, 폭 2m의 철교로 바뀌었습니다.
2011년 수명을 다한 후에는 문화재로 보존 중입니다.
삼례읍 신금리에 '동학농민혁명삼례봉기역사광장'이 있으며, 삼례공용버스터미널 앞 도로는 '동학농민길'이라고 이름을 붙여 동학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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