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의 공적 책무성 강화는 반드시 필요
2018년 6월 지방교육자치 선거를 통해 상당수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 그들의 주요 공약을 살펴보면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과 지도를 체계화하기 위해 지역차원의 사립학교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립학교 육성 및 민주적 운영을 위한 지원조례”를 제정하겠다고 상당수 교육감들이 발표한 바 있다. 즉 사립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사립학교 운영의 파행 사례를 생각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법과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교육감들의 입장을 환영한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시·도교육감이 사학을 지도·감독할 수 있는 조례를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에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었던 과거를 돌아보면서 교육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사립학교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의 역량이 부족해 국민의 기본교육을 감당하지 못하던 시절, 개인이나 단체들이 사재를 털어 국가가 해야 할 몫을 스스로 맡은 의로운 행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오늘날 일부사학의 행태를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재단의 이사장이나 교장직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가 하면, 재단전입금납부비율이 전국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며, 학생인권이나 교권이 제대로 보장되지도 않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모두가 관리 감독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실제로 모 지역 인권교육센터에서 최근 3년간 인권침해사례를 분석해서 발표한 결과를 보면
학교구분 | 건수 | 설립형태 | 건수 |
초등학교 | 30 | ||
중학교 | 37 | 공립 (초등학교 미포함) |
53 |
고등학교 | 91 | 사립 | 75 |
합계 | 158 | 합계 | 127 |
공립대 사립의 비율이 5:5를 차지하는 와중에 전체 상담 및 조사 중에서 사립학교에서 벌어진 인권침해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 상담이나 조사의 내용들이 체벌이나 인격권 침해, 강제적 학습강요, 종교 강요, 성(性)과 관련된 문제 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학의 자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위계에 의한 힘의 논리가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알다시피 공·사립을 막론하고 교육에 필요한 거의 모든 예산은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사립학교의 공적 책무성도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립학교(사학) 비중이 높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학교 중 중학교 23퍼센트, 고등학교 45퍼센트, 대학교 85퍼센트가 사립학교다.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학이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책무를 다하고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회의적이다.
우리나라 사학은 외형만 '사립'인 경우가 많다. 사립 중·고등학교의 학교운영비 중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98퍼센트나 된다. 사립학교법인(사학법인)이 내야 하는 재단전입금은 고작 2퍼센트에 불과하다. 사학이면서도 학교 재정의 대부분을, 학생이 내는 학비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립학교에 쏟아 붓는 국민 세금만도 약 5조 원에 이른다. 대한민국 사학은 명색만 사립일 뿐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과 다름없다.
사학의 자주성과 공공성은 배타적 개념이 아니다. 사학은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보장하고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학생인권조례제정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사학지원조례제정과정에서도 사학재단들은 극렬한 반대의 모습을 보일 것이 예상된다. 2005년과 2007년 사학법 개정 과정에서 볼 수 있었듯이 핵심적인 이해관계자인 사학법인들의 격렬한 반발이 불 보듯 뻔히 예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사립재단들의 의식도 변화해야 한다. 사학재단들은 이번 기회에 학생들이 공립학교 아이들에 비해 차별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받을 것은 받아내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사학들은 그동안 채용과정의 불투명성과 비민주적운영, 족벌경영, 인권침해 등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사학지원조례제정과 운영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사학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공립 중심으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는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국가와 정부가 사학의 공공성과 공적 책무성을 힘주어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학법인들 자신이 천명했듯이 '사학을 위하여 제공된 재산은 국가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학의 성공 없이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교육감들이 추진하려는 사학지원 조례가 지역의 사학, 나아가 대한민국 사학 전체의 진정한 성공을 위한 첫 자리에 서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향후 각 시도교육청은 이 조례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행정 지도를 실시하고, 사학기관의 민주성·투명성·재정 건전성을 제고하는 등 사학기관의 공공성을 함양함과 동시에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근거로 삼기를 기대한다.
인권 친화적 학교 만들기는 사회전반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고, 공립학교에서만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서 시행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므로 부족한 곳,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곳까지 세심히 살피면서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인권 친화적 학교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립학교의 공적 책무성 강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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