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사회에서 갑자기 아버지?
학교관리자나 관료들 중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를 할 때 주로 발생한다. 이런 저런 논쟁을 하다가 끝내 자신의 궁색한 논리가 바닥을 드러낼 때 쯤 비장의 무기이며 전가의 보도처럼 권위에 기대 지금까지 한 말은 송두리째 무시하고 아무런 댓거리를 못하게 입을 막아버리는 효과를 가져 오는 말이다.
“학교에서 교장이나 교감은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다. 교육감은 조직에서 아버지와 같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말이 가지는 군사적이고 유교적이며 체제 순응적 복종의 가치관을 뼛속 깊이 체화한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과거에는 적잖이 분노했으나,
이제는 연민이 느껴진다.
그들이 교사로서의 직분을 가졌을 때는 학생들이 입바른 소리를 하면 감히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가지는 교사에 대한 도전이라 여기고 힘과 권위로 뭉개버렸을 것이며,
시간이 지나 관리자였을 때는 동료교원이나 부하직원의 이의제기에 “부모 같은 관리자한테 버릇없이 어딜 감히.” 이러면서 짓밟았을 게 불을 보듯 뻔한 그의 삶의 이력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이랬을까? 어쩌면 그들도 세월 속에서 길들여졌을 것이다. 혹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문제제기도 하고 입바른 소리도 곧잘 하며 살았을 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이내 받아들이고, 상급자가 시키는 일에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능력인양 최선을 다해왔고 근무평정이나 성과급 고득점 등 작은 보상에 보람과 희열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그중 최악은 후배들의 이의제기에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해봤는데 말이야. 사는 게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고. 나도 옛날에 전교조 해봤었는데...” 이러면서 마치 이명박처럼 안 해본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인양 행세하는 사람이다.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만들기보다는 마치 마름처럼 후배들을 길들이기에 여념이 없으면서 그것이 조직을 잘 운영되도록 하는 길인 것처럼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며느리가 더 밉다고 했나. 나쁜 양반보다 더 지독한 마름이 되어 관리자의 심기를 살피고 충실한 방패가 되어 자기 밑으로 줄 세우기 하는 그런 사람들이 최악이다.
경험상 그런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또 중요한 문제일수록 자신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사들이 숨막혀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항상 윗선의 눈치를 살피고 오더가 떨어지길 기다리고만 있다. 그들에겐 자아(自我)는 없고 오직 명령에 따른 복종만이 있을 뿐이며, 아래로부터의 요구는 윗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방어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긴다. 또 고참급 선배나 관리자가 되어서는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주저하거나 못하면서, 공문 띄어쓰기나 오탈자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다른 학교에서도 선례가 있나 찾아본 뒤 사례가 없으면 절대 결재해주지 않거나, 회식이나 친목배구행사 불참자에게는 쓴 소리를 마구 쏟아내고, 그런 시답잖은 일에 에너지를 쏟으면서도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으며 얼마나 바쁜지 아느냐고 자기 위안을 한다.
정의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고 의리나 복종, 우리가 남이가 뭐 이런 류의 마초의식에 젖어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인권 친화적이고 민주적 학교 만들기는 시스템의 문제를 개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각자의 인권감수성 키우기와 민주적 문화를 경험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또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해 타협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하고 저항하면서 성장한다.
오늘도 어떤 주제로 나의 의견을 말하다가 누군가에게 아버지가 어떻고 하는 시답잖은 소릴 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당황스러워 쓴 웃음 짓고 넘어가곤 했지만, 오늘은 상대가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어서 또 도저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의 문제를 논의 중이었기에 그럴 수가 없어서 한마디 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교육감이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교육감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거예요. 아니면 알아서 의중을 살피고 지금 방패막이 하시는 거 에요? 어떻게~ 아버지 같은 분에게 효도는 잘 하면서 지내고 계신 거죠?’
이런 식의 되치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는지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해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 아버지라 생각하는 걸 막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에게 아버지가 둘이건 열이건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들을 다른 사람도 아버지라 여기도록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아버지는 한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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