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학교폭력. 인권교육
1교시 쉬는 시간. 교사휴게실에 있는데 한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선생님. 애들 싸워요”
놀라서 달려가니 6학년 사내 두 녀석이 엉겨 붙어 씩씩거리며 종합격투기 파운딩과 암바를 시전하고 있다.
겨우 떼어 놓으니, 씩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눈에서는 강렬한 분노의 레이져를 쏘며 여차하면 한판 더 붙을 기세다. 평소에도 기가 센 두 녀석이었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그에야 오늘 부딪힌 것이다.
주변은 이미 싸움을 구경하러 몰려든 녀석들로 에워져있고,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뒤에 교사가 어떤 처분을 내릴 것인지 처다 보고 있다.
대개 남자아이들의 싸움이 그렇듯 처음엔 장난이었다고 한다. 툭치는 장난이 맞받아치는 강도가 세지고 주먹의 강도가 세짐에 비례하여 분노게이지도 상승했을 테고, 자연스레 엉겨 붙은 것이다.
간단히 상황파악을 하고 외관을 살피니 피가 나거나 상처가 보이진 않는다.
일단 수업이 시작되어 싸운 둘은 교실 뒤편에 따로 격리하여 진정시키고, 잠시 뒤 다른 학생들에게 학습과제를 부여한 후 차분히 이야기한다.
일차적 판단으로는 지속적 가해나 중대한 학교폭력이라기 보단 그저 자라면서 겪는 사내들의 투닥거림으로 보여서 쉬는 시간의 싸운 일은 점심 먹고 하교 한 뒤 따로 이야기하자며 일단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몇 시간 흐른 뒤 점심시간.
급식 줄을 서 있는데 아까 그 두 녀석이 웃으며 장난치고 있다.
‘너네 뭐냐? 아까 싸웠잖아. 근데 갑자기 왜 죽고 못 사는 친구모드야?’
당황 반 반가움 반으로 물으니
“선생님. 우리가 언제 싸웠던가요?‘ 라고 능청스럽게 웃으며 씩씩하게 밥도 잘 먹는다.
뭐지. 이 허무함은. 나만 걱정한 건가.
그래. 그렇게 또 하루하루 자라는 거겠지.
심각한 학교폭력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온갖 대책을 다 내놓지만 달라지기는커녕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학교폭력은 유지되고 있고 심지어 더 흉포해지고 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은 힘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교육으로 풀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학교폭력을 폭력적으로 풀면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문제가 생기면 대책이라는 게 기껏 엄벌이나 격리수용, 아니면 법을 만들어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문제의 본질은 덮어놓고 결과만 치료하겠다는 대책에 있다.
작은 교실에 수많은 학생을 앉혀놓고 작고 네모난 책상에 꿈을 매어둔 채, 욕망이나 꿈 따위는 뒤로하고 인생의 목표는 대학가서 이루라며 집단 사육하는 공장처럼 학생들을 대하면서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가해자 엄벌과 피해자 치유만의 대증적 요법만으로 학교폭력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개인의 일탈에 앞서 인권의식의 부재가 더 큰 원인이다. 학교폭력은 가해자를 엄벌하고 학교에 전담경찰관이 와서 학교폭력 예방교육이라며 신고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경고하고, 국회가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며 폭력은 사회화의 결과다. 학교폭력은 가정폭력, 사회폭력 그리고 자본이나 권력의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에 의해 청소년들이 오염되고 전염돼 모방범죄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서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한다. 학교문화는 여전히 위계적이고 폭력적이다. 복종을 강요하는 학교생활규정이 여전하고,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시간 수로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봉사활동, 남을 딛고 올라서야 좋은 성적을 받게 되며,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경쟁교육이 여전하다.
인권의 가장 기본테제는 ‘존중’이다. 교사-학생, 학생-학생 간 상호존중과 신뢰가 아니라 위계에 따른 순종과 목표만을 강요하는 학교문화를 존중의 문화로 바꾸기 위한 인권 교육이 실종된 학교에서 폭력이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학교와 사회는 얼마나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사회구성원 무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할 기본적인 가치요 교육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가치다.
인권교육은 학교가 감당해야 할 가징 기본적인 가치교육이다. 그런데 학교는 인권문제를 꺼내면 교권을 걱정하고 교육이 무너진다고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은 인권교육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본적 가치요, 인류가 추구해야할 자유, 평등과 함께 추구해야할 가치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세계관을 가르쳐야 한다. 처벌만능주의로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학교문화를 바꾸고,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가르치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나의 권리가 존중받는 경험을 제공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자치의 기회를 보장하는 노력이 지속될 때 학교는 사람됨을 가르치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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