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1)
이번 호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는 웅치전적지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웅치전적지는 완주군 소양면 신천리 산 18-1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웅치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의 전적지로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웅치전적지는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맞서 싸웠던 격전지 입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40여 일 만에 한양, 평양, 개성이 함락되고,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방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왜군은 육로를 통하여 침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왜군은 창녕에 있다가 남원으로 들어간 다음 전주를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병장 곽재우 부대의 공격으로 진로가 막혀 성주로 올라왔습니다.
왜군은 용담, 진안을 공격하여 웅치를 넘어 진산에 진을 치고 이치를 넘어 전주로 들어오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김제 군수 정담은 전주진관병마첨절사로서 동북 현감 황진과 더불어 지세를 이용하여
의병장 황박, 나주판관 이복남과 함께 진을 치고 전투를 지휘하였습니다.
1592년 7월 7일 수많은 왜군에 맞서 황박과 이복남은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왜군이 전면 공격을 감행해 오자 끝까지 분전하였으나, 결국은 패하였습니다. 이 싸움으로 정담, 강운, 박형길이 전사하였습니다.
싸움이 끝난 후 왜군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에 깊이 탄복하여 시신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조선국(吊朝鮮國) 충간의담(忠肝義膽)'이라 쓴 푯말을 세운 후 금산으로 퇴각하였습니다.
현재의 전적지에는 1979년에 세운 웅치 전적비가 있습니다.
웅치전투로 인해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았고 이후 조선군은 이치 전투에서도 승리하여
결국은 웅치, 이치 전투로 인하여 전라도가 지켜졌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은 웅치, 이치전투에서 육군이 처음으로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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