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69)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남원 석돈입니다.
남원 석돈(南原石墩)은 남원시 하정동 남원우체국 내에 자리한 단 모양의 당산(堂山)을 말합니다.
남원 석돈은 화강석을 이용하여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돌로 쌓아 올린 모습으로, 남원시 하정동 189-3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2년 6월 20일 전북 민속 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석돈(石墩)이란 단어가 들어 있는 지정 문화재는 국내에서 '남원석돈'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남원석돈이 가지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정서적으로 남원을 하나로 묶을 또 다른 정신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입니다.
조선시대 남원의 객사인 용성관(龍城館) 뒤쪽에 거대한 돌무덤이 있어 이를 석돈(石墩)이라 불렀습니다.
조성 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며, 1986년 우체국을 신축할 때 일부가 파괴되었는데 이만기, 양창현, 노상준 등 지역 원로들이 법원에 우체국 신축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정보통신부에 당산 보존의 당위성을 진정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구되었습니다.
‘용성지’에는 당산신(성을 지키는 신)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됐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용성관 뒤에 석돈이라는 커다란 돌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석돈은 특히 북문을 지키는 당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용성관 후면, 지금의 남원역 관사 부근에 어마어마하게 큰 돌무덤이 있어 이를 석돈(石墩)이라고 했다 합니다.
석돈 위에는 온갖 수풀이 무성하고 고목이 우거져 때로는 두견새가 날아와 깃들이고 철따라 두루미도 찾아오곤 하였다고 합니다.
수풀이 무성하고 나무가 우거져 새들이 찾아오기도 하였는데, 그 뒤 이곳에 관공서를 지으면서 석돈을 헐어 돌은 석재로 사용하고 흙은 평지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합니다.
그런데 관공서를 신축할 때 이를 헐어 돌은 석재로 사용하고 흙은 골라 평지를 만들었는데 이로부터 시내가 위축되고 성안에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석돈 당산제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6회 실시하다가 중단되었던 것을 2006년에 다시 복원해 현재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석돈은 받침부에 80×40㎝ 크기의 돌을, 중간부와 상부에 30×20㎝ 크기의 자연석을 쌓아서 네모난 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작 연도는 알 수 없으며, 1986년 우체국을 신축할 때 일부 파괴되었던 것을 복구해 놓은 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해마다 남원문화원에서는 남원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석돈 당산제는 남원의 평화 번영과 주민의 화합, 그리고 지역 문화,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목적으로 축원의식이 주가 됩니다.
당산제례의 순서는 첫 번째 들당산굿을 실시하여 조상신을 맞이하고 다음에는 당산제례가 실시됩니다.
당산제례는 분향례, 강신례, 참신례, 초헌례, 독축례, 아헌례, 종헌례, 유식례 순으로 실시합니다.
세 번째로 당산굿으로 액막이굿과 해원굿을 하고, 네 번째는 날당산굿을 실시하여 신을 보내는 의식을 합니다.
과거 전국 12당산 중 하나였던 남원석돈은 용성관과 더불어 남원이 웅장한 고을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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