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사단법인 인권누리 특강 자료]
인권과 조례
김해원(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Ⅰ. 인권의 개념과 의미 김해원
1. 인권(“기본적 인권” 혹은 기본적 인권의 준말로 통용되는 “기본권”)은 개인이 국가에 대해서 가지는 헌법적 차원의 권리이다. 이러한 점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는 헌법 제10조 및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을 통해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여기서 ‘헌법적 차원’이란 단순히 인권이 헌법 제10호로 공포된 대한민국헌법 안에 편입되어있는 상태 내지는 그 형식을 의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헌법적 차원’이란 것은 헌법을 만들어내는 권력인 헌법제정권력(주권) 아래에 놓여 있지만, 입법권 · 행정권 · 사법권 등과 같이 헌법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은 모든 권력의 활동보다는 상위에 위치한다는 실질을 갖고 있다. 실제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는 헌법재판을 통해서 그 효력이 상실 혹은 취소되거나, 새로운 처분으로 대체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인권은, 주권자(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이 쟁취해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 제1문)를 훼손 · 말살하거나 폄훼하는 모든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주권자의 무기’라고 하겠다.
인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국가의 절대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국가절대주의 혹은 자기 목적적 국가관을 배척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조 제2항에 부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권력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 인권에 기대어 국민 개인이 삶의 보존과 향상 및 존엄과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권력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것은 주권자에 걸맞은 대우와 지위를 확보하는 것인바, 이는 헌법 제1조 제2항에 근거하는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관철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혁명을 통해 주권을 찬탈하고 헌법을 제정한 근대인들의 진정한 계승자로서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전리품이자 무기인 인권을 공부하고 이를 시퍼렇게 벼리는 것은,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계속되는 권력의 폭거와 무능을 폭로하고 국가폭력을 순치시켜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우리의 존엄과 행복의 계속적 고양을 이룩하는 과정이 된다.
2. 그런데 인권이 헌법적 차원의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헌법적 차원의 개념이 인권인 것은 아니다. 인권이해에 있어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또 다른 중요한 출발점은 헌법 제2장의 표제어(“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듯이 인권 또한 ‘권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인권에도 권리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요구’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실제로 헌법 제2장 표제어에 등장하는 “권리”는 廣義의 권리로서 헌법 제10조 “기본적 인권”(기본권)이나 헌법 제37조 “자유와 권리”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헌법 제37조 “자유와 권리”는 광의의 권리 속에 내포된 권리보유자의 소극적 지위와 적극적 지위를 각각 의무로부터 해방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자유”와 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狹義의 “권리”로 포착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특정한 인권을 갖고 있다’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인권주체(인권보유자)가 특정한 무엇과 관련하여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주체(인권보유자)가 인권상대방(인권의무자)에게 특정 무엇과 관련된 일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자유로서의 인권은 무엇보다도 인권주체에게 현실 속에서 자신이 처해있는 상태와 상황을 총체적으로 살피게 하여 좋은 선택을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라면, 인권에 내포된 ‘요구’는 인권침해를 막아내는 보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허용이라는 당위의 양식으로 포착되는 상태(즉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인 ‘자유’는 권리의 소극적 측면으로서 권리주체를 의무로부터 해방하는 데 그치지만, ‘요구’는 권리상대방에게 일정한 의무(금지라는 당위의 양식으로 포착되는 부작위의무 혹은 명령이라는 당위의 양식으로 포착되는 작위의무)를 부과하는 권리의 적극적 측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이론 그 자체 혹은 인권주체의 개인적 수양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서 인권의 실제적 구현을 위한 인권이론과 인권실천을 염두에 둔다면 인권에 내포된 ‘자유’보다는 ‘요구’가 더 많은 주목을 받으며 두드러지게 활용될 수 있어야 할 것인바, 인권적 요구에 주목해서 포착된 헌법적 차원의 권리의무관계인 인권관계에서 인권의무자인 국가의 행위가 합헌적인 ‘인권제한’인지 혹은 위헌적인 ‘인권침해’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사고의 과정, 즉 인권심사가 인권공부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Ⅱ. 인권공부의 방향과 필요성
1. 인권을 내걸고 행하는 분별없는 요구들에 부화뇌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헌법적 차원의 권리로서 인권’이 갖는 의미를 각성하여 정확한 인권이해와 정당한 인권주장의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권을 추상과 이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보편절대적 가치 내지는 진리로 받들어 삶을 위한 인권이 아니라 인권을 위한 삶을 강조하거나 혹은 한국어공동체 내에서 보편적으로 승인된 사전적 정의에 집착하여 인권을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로만 묶어두고 동어반복을 위한 언어유희로 소진하는 것은, 관념이나 언어의 세계에 우선하여 구체적 현실로 실존하는 우리 삶의 실제적 고양과 인간 존엄을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서 인권을 활용하는 데 장애가 된다.
인권이 헌법적 차원의 권리라는 점을 도외시하거나 망각하여 ①입법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법률적 차원의 권리로 인권을 전락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②실제 효력을 갖고 통용되는 최고규범인 헌법으로부터 충분히 도출될 수 있는 인권이나 인권적 가치를 성급하게 (내용과 효력이 안정적으로 관철되기 어려운) 자연법에 기대어 주장하거나 혹은 ③(국제적으로는 강대국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국내적으로는 헌법 하위의 서열에 놓여 있는) 국제규범으로부터 연역하는 것은, (이미 헌법을 통해서 확보한 인권의 내용 및 인권보장의 수준을 아무런 실익 없이 후퇴시키는 것이란 점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압제에 저항해온 혁명의 성과(즉, 헌법을 통한 인권보장)를 폄훼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권공부가 주권과 인권을 쟁취한 정치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저지르는 자기 부정 내지는 자해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유사 권리들과 뚜렷하게 분별 되는 인권 고유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2. 아울러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인권을 의제화하고 인권 침해적 요소를 발견해내면서도 인권을 인권보유자의 행위를 규율하는 예절이나 윤리·도덕 등과 같은 수단으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권의무자인 국가를 소환하여 문제 된 사건이나 관계를 ‘인권관계’로 전환하거나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무엇보다도 오직 국가만이 인권의무자라는 점, 국가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폭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가는 주권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 등에 대한 뚜렷한 자각에 토대를 둔 ‘인권감수성’을 통해서 추동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활영역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갈수록 정교하게 은폐되고 있는 국가의 폭력성을 발견하여 이를 폭로하고, 나아가 그러한 폭력에 저항하여 이를 길들이는 심성구조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심리적 태도 바로 그것이 인권감수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보적 단계에서의 인권공부는 인권관계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인권감수성 함양에 특별한 주목이 필요하다.
3. 한편 일정한 사실이나 형편에 작용하여 그것을 변혁시키려고 하는 인간의 의식적·능동적 활동인 실천이 헌법적 차원의 권리인 기본적 인권과 결부해서 특별히 강조되거나 요청되는 경우는 무엇보다도 인권이 침해되고 있거나 침해될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권공부가 (단순한 이론적 호기심 충족을 통한 지식의 증대나 인권적 문제 상황에 대한 초보적 환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인권실천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복잡다기한 생활영역에서 포착된 특정한 인권관계에서) 인권의무자인 국가의 구체적인 행위가 헌법적 차원의 권리인 인권을 침해하여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인지 아니면 용납될 수 있는 행위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능력의 함양을 핵심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요컨대 인권침해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심사·판단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심사·판단기준들은 언제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강도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탐구인 ‘인권심사’가 인권실천을 위한 인권공부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4. 구체적으로 문제 된 인권관계에서 심사대상인 특정 국가행위를 인권심사기준에 기대어 평가하는 활동인 인권심사를 통해서 인권침해우려상황 내지는 인권침해가 확인되었다면, 비로소 그에 대한 대응방식으로서 인권실천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그런데 인권실천의 양상은 통상 ‘심사대상인 국가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더 좋은 다른 제도나 새로운 국가행위를 모색하여 이를 구현하려는 적극적 방법’과 ‘심사대상인 국가행위에 대해서 위헌을 선언하여 그 효력을 상실케 하거나 해당 국가행위를 배척하는 소극적 방법’으로 대별되는데, 전자인 적극적 인권실천은 주로 정치적 차원에서 후자인 소극적 인권실천은 주로 사법적 차원에서 선택된다. 따라서 인권실천을 위한 각종 애씀과 헌신이 인권남용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적 방법에 의한 인권실천(적극적 인권실천)과 사법적 방법에 의한 인권실천(소극적 인권실천)이 서로를 살피지 않고 자신의 실천만을 과잉 달성하고자 할 경우에 초래될 수 있는 비극을 경계하고 인권실천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지점들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정치와 사법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인식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기본원리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과 같은 이념에 내포된 반인권적 혹은 인권 억압적 측면을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 또한 중요한 인권공부의 내용이 된다.
5. 모든 공부는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부하는 자와 그를 둘러싼 주변을 성찰하는 과정이고 또 그러한 과정이어야 한다. 인권공부 또한 인권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활약을 돌이켜 살피는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권을 공부하는 우리가 인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인권공부 그 자체가 우리의 존엄을 구현하는 인권실현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인권공부는 어떤 사태를 성급히 인권 문제로 선언하는 것보다는 인권이 무엇인지를 묻고 인권 그 자체를 문제로 포착하는 과정을 통해서, 포착된 인권 문제의 결론으로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것보다는 결론인 인권침해에 이르게 된 이유와 근거를 논증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권침해에 맞서서 특정한 인권실천을 대응책으로 제시하는 것보다는 제시된 인권실천의 한계와 문제점을 살피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인권뿐만 아니라 인권공부 그 자체와 인권을 공부하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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