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78)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신흥학교입니다.
위치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399(중화산동 1가)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흥이란 이름은 1908년부터 사용하게 되었는데, 신흥은 신 새벽(new dawn), '새로운 여명'이라는 말이라 합니다.
새롭게 흥한다는 뜻이 아니라, 척박하고 어두운 조선 땅에 선교사들이 마음을 먹었던 것은 '학생들을 가르쳐서 이 어두운 세상을 빛의 세상으로 바꾸자'는 의미에서 신흥이라는 이름으로 쓰게 된 것입니다.
원래 신흥학교 자리에 조선 시대 땐 희현당이라는 학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1700년 김시걸이라는 관찰사가 신흥학교 자리에 '희현당'이라는 학문의 전당을 세워 당시 전주에서 10명, 호남 전 지역에서 20명 등 호남지역의 최고 인재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켰다고 합니다.
희현당은 전라감영이 직접 관리하는 학교였습니다.
신흥학교는 교훈은 '지·인·용'이며, 법인명은 재단법인 호남기독학원입니다.
1900년 9월 9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W. D. 레이놀즈가 신학문당을 설립한 것이 기원이며, 설립이념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을 기른다.'입니다.
1906년 선교사 J. S. 니스벳이 예수교학교로 이름을 정했다가 얼마 후 신흥학교로 변경했습니다.
1909년 사립신흥학교로 정식인가를 받았고, 1933년 5년제로 수업연한을 연장했습니다.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자진폐교했다가 1946년 11월 신흥초급중학교(3년제)로 인가받았고, 1950년 4월 신흥중학교와 신흥고등학교로 분리·개편되었습니다.
신흥학교는 1919년 전주 3.1만세운동 중심에 있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전주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3.1만세운동은 신흥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고 교회로는 서문교회, 남문교회, 완산교회 교인들과 함께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를 인쇄하여 남부시장에 있는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신흥학교는 일제 강점기 때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자진 폐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다가 신사로 신사참배에 동원되었는데, 신흥학생들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1980년 5월 27일 신군부에 의해 전남도청이 함락되었던 날 아침, 전북 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을 알리기 위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신흥고 전교생 1500여명은 1교시 수업 시작에 맞춰 일제히 운동장으로 우르르 뛰쳐나갔습니다.
조회대에 올라간 3학년 학생이 호소문을 낭독하자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전남지역 외 고교에서 일어난 최초이자 유일한 시위였습니다. 이름하여 ‘5·27 신흥 민주화운동입니다.
신흥고의 5·27 시위는 5·18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광주지역 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최초의 시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광주에서 발생한 계엄군의 만행과 진상을 알리고자 가두시위를 계획했으나 정보가 유출되면서 군경이 착검한 한 채 막아서는 바람에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운동장에서 1시간30분 동안 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후 학생 25명이 무기정학 등을 당했고, 시내에서 유인물을 배포한 학생 2명이 실형을 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사학인 전주신흥중고등학교(이하 신흥학교)는 한강 이남의 최초 학교로 개교한지 120주년이 됩니다, 신흥학교는 3.1운동과 한국전쟁,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 참여한 전북의 민주인권역사유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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