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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105호 회원의 붓

인권누리 2023. 4. 11. 10:30

세상을 향한 관찰과 질문 - 복 효 근

가장 이성적인 시간에

감성적인 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다

매주 토요일 리더스 클럽 독서토론

매주 토요일 이른 새벽 7시부터 9시까지 책을 좋아하고 더불어 인생을 같이 살아가고,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독서토론을 한다. 예고해준 책을 각자 읽고 와 사회자가 질문지를 발제하여 모둠별로 앉아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수용하며, 우리는 이 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복효근 시 - <중심의 위치>에서

이번주는 복효근 시인의 시집 <중심의 위치>였다. 얇은 책에 짧은 시들도 좋았고, 오랜만에 접하는 시의 세계가 인생을 올곧게 걸어온 시인의 진중한 목소리로 많은 공감과 깊은 울림을 주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환기시키는 시간이었다. 혼자 읽고 사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같이 읽고 눈빛을 마주하고 서로 호흡하며 깊이 공유해주는 따스한 시간이었다.

바다

- 복효근 -

네 앞에선 언제나

오독이거나 난독이었다.

너는 채 읽기도 전에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네 앞에 서면 늘

나는 문맹이 되어

발음하기도 전에 포말로 부서지는 자음과 모음

단 한 줄도 읽을 수 없다.

너라는 바다

바다 앞에서 막막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지리산을 곧잘 찾아 위안을 받았던 젊은 날, 때로는 탁 트인 바다가 보고파서 무작정 서해로 달려가기도 했었다. 바다는 넓은 품으로 나를 반겨주지만 결국 바다 앞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다 돌아오던 날, 뒤따르던 파도소리마저 심장에 무거운 징소리로 가라앉고, 나는 말없이 돌아섰다.

비단, 바다가 아닌 우리가 만나는 모든 타자는 오독이거나 난독이다. 때로는 나 자신의 마음도 알 수 없는데, 너라는 타자를 어찌 읽어낼 수 있을까. 그게 우리네 삶이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거나 친구이거나 가족인 너라는 바다 앞에서 우리는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가 되지만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바로 우리의 운명임을 기억하며 바다라도 가슴에 품어보자. 너른 바다의 품처럼 그렇게 너를, 내가 만나는 타자들을 품으며 갈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진리이다.

 

중심의 위치

- 복효근 -

어떤 꽃은 절벽에 저를 세운다

내디딜 곳 없어

거기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어떤 외부도 꽃을 흔들 수 없다

이육사의 <절정>이 생각나는 시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 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수평적 극한인 북방한계선, 수직적 극한인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서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지만 거기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엄청난 우주의 전복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고, 지구는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고통과 절망의 절정에서마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그 지점에서 세상과 지구와 우주를 바라볼 수 있을까? 극한의 고통에서도 세상을 통찰할 수 있을까? 참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이듯,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그 곳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고. 그 무엇도 나를 흔들 수 없다고.

그것은 그렇게 살아갈 것을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줄 것을 타자에게 요청하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자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나 역시 세상의 중심이 되어 세상을, 지구를, 우주를 통찰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할 일이다.

겨울 이야기 5

- 복효근 -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길고양이는

마실 물이 없어 죽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아침마다 물을 챙겨주었더니

어느 날은 죽은 쥐를 한 마리

다음 날은 두더지 한 마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퇴직도 했겠다 아프리가 어린이 후원을 중단할까

생각했던 내가

고양이 볼 낯이 없습니다

공감이 많이 가는 시였다. 길고양이에게 마실 물을 챙겨주는 시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되어 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뭣모르고 죽은 쥐와 두더지를 가져다주는 들고양이의 보은의 자세, 한갖 동물도 저렇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후원을 그만둘까 했던 마음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시인의 순수!

선행과 봉사 앞에서 망설여 본 적인 있는 사람들, 누구나 한번쯤은 느꼈을 그 마음을 훅 치고 가는 저 피리소리같은 청량감이 몽실하게 가슴에 머물며, 다시 제 갈길을 가게 하는 내밀한 힘으로 다가올 것이다.

복효근 시인이 말하다

본인은 대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적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 사물, 자연 등 참으로 다양할 것이다. 그들에게 애정과 관심으로 귀기울이는 시인의 삶의 자세가 경건하게 느껴졌다.

<중심의 위치>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시인이 시를 통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구나' 이런 것들은 독자들이 상상하고 취해야 할,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다만 누군가 질문을 하니 대답을 저어하면서 시인은 말한다.

<중심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쓴 시는 내디딜 곳 없이, 의지할 곳 없이 절벽에 서 있는 꽃의 모습이다. 스스로 겪어 온 삶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과 의지를 담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제도와 이어져온 관습과 사상, 체제 속에서 안전함과 편리함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것이 과연 옳은가. 그 뒷면을 들여다보려하지 않는다. 불편하기도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하기도 하니까.

 

시인은, 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한다. 이 체계와 사상이 잘못되지는 않았는가. 이 이념과 사상과 체계를 유지해가며 이익을 얻는 자들은 누구인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화원에 진열되어 있는 꽃이 아니다. 절벽 위에 서 있는 꽃처럼 어떤 체제가, 이미 만들어진 제도와 관습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규정해나가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활 속에서 늘 촉수를 세우고 일상을 관찰하면서 시의 소재와 재료들을 모으는 시인! 늘 관찰하고 시를 형상화하고 또 지면을 통해 독자와 만나지만, 시인이 노래하는 시처럼 그런 삶을 사는 시인은 많지 않다. 시인 역시 충동과 욕망의 인간으로서 완성을 향해 가는 우리와 같은 미완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다만 시인은 삶의 지향이나 의지를 담아내며 현실과의 괴리를 메꿔나간다. 그것이 또한 독자에게 희망이다.

시인의 노래와 너무 멀어져버린 세속적인 욕망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은 실망을 넘어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분명 시와 시인의 삶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시의 노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삶의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고, 이에 응답한 시인 중 한 명이 복효근시인이다.

 

시란 무엇인가

시는 노래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느낀 정서를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에서부터 오늘날의 많은 시들이 그렇듯이 슬픔과 괴로움, 고독과 그리움 등 시적 형식으로 담아내 짧은 노래로 압축하여 그 정서를 공유하기 위해 노래하기도 하고, 또는 그런 정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기도 하고,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여 강인한 마음을 그려내기도 한다.

시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 가슴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좋은 시이다.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고 난해하고 공감이 안가면 그 시는 나에게 좋은 시가 아니다. 읽으면서 가슴으로 전해지고 진한 감동을 주며 공감이 이루어질 때 그 시는 비로소 나의 시가 된다.

누구나 시인이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가슴으로 전달되는 시가 좋은 시이듯, 가슴으로 쓰여진 시라면 가장 좋은 시가 아닐까.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매일의 경험에서 느끼는 것들을 시라는 짧은 형식에 담아 보려는 연습이 중요하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주려고 하지 말고 짧게 함축된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순간이 소중하다. 조금 더 관심과 세심함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자꾸 써보는 것! 여기서부터 출발이다. 나 역시 시쓰기가 어렵다여겨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연습을 하다보면 보다 더 자연스러워지고, 또 삶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지지 않을까.

시쓰기- 삶의 자세 변화 - 시쓰기 향상 - 삶의 자세 성숙으로 우리네 삶이 변화하지 않을까.

혁명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 봄을 언어로 그려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누구나 시인이다.

*<중심의 위치> 67편 중 암송한 3편 ㅡ 시는 노래처럼 암송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