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있던 일들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자꾸 젊은 시절 저질렀던 철없고 부끄럽던 실수들이 떠오릅니다.
스물일곱의 추석날 저녁. 내일이면 서울로 가겠다고 시골 역에 가서 입석표를 바꿔오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미리 두 장을 사 두셨는데, 한 장을 돈으로 바꿔오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 오토바이를 타고 삼거리 좌회전을 하려고 멈췄습니다.
관광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아무 생각 없이 좌회전하다가 버스를 바짝 따라오던 승용차에 치여 오토바이 바퀴가 핸들과 1자가 될 정도로 틀어졌습니다.
승용차는 약 7~8미터 진행한 후 멈췄고, 오토바이 앞바퀴 브레이크에 찢겨 펑크가 난 상태였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아마 그때 운이 나빴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대단한 불효를 저지를 뻔 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기차표 바꾼 돈으로 타이어 수리비를 지불했고, 마을에 사는 먼 친척의 차에 오토바이를 싣고 집에 왔지만,
아버지의 교통수단이었던 오토바이는 더 이상 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께서는 5~6년을 더 사시고 70도 안 되는 연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불편하게 했던 사고였습니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두고두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고였고, 아버지의 교통수단을 빼앗은 불효였습니다.
밭에서 풀을 뽑거나, 혼자서 고추며 땅콩 등을 심고 있자면 위와 같은 불효와 실수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아침에 너무 일찍 깨어났을 때도 제가 20세기에 부모님께 저질렀던 불효와 실수들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불찰과 실수가 떠오르면서 같이 동반하는 생각은 그 모든 순간과 과정에서 믿어주시고, 지켜봐주시고,
항상 긍정의 희망을 말씀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정직하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고 살라하시던 메시지가 한 쌍으로 뒤를 잇습니다.
공교롭게도 1970년에 태어나 21세기까지 20대를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저지른 잘못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그 중 오토바이 사고는 그야말로 운이 좋았을 뿐더러 작은 사고인지도 모릅니다.
부모님께서는 가난한 살림에 막내아들을 서울에 있는 학교로 보내셨고, 학비를 충당하신다고 안산의 아파트 셋방을 얻으셨습니다.
젊은 부부가 사는 작은 아파트의 방 한 칸을 얻어 두 분이 기거하시며 청소노동자와 건설노동자로 일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농촌에서 여간해선 현금을 정기적으로 확보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셨던 부모님께서 농토를 남에게 세주고 도시의 가장 낮은 임금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돈을 받아들고 학교에 가면 세상이 참으로 불공평하고 화가 나서 술을 사 먹었습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일들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에 어머니께서 골다공증으로 발목골절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권 생활을 접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이때 이미 저는 학교 졸업장에 대한 미련도 학업에 대한 관심도 사라진 때였습니다.
마침 많은 학생과 노동자가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또는 시대의 울분을 참지 못해 세상을 뜨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교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생활도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 마치고 가족들에게 불려가서 군대 가기를 종용받고 군대에 갔다 와서는 뭘 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군대를 갔습니다.
물론 군대를 갔다 와서도 약속대로 저는 맘대로 학교와 거리를 돌아다니며 세상의 온전한 변화를 꿈꿨습니다.
머리가 깨지고, 뉴스에 나오고, 다시 복잡한 가정사에 얽히며 반항하는 사이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골탑이란 그런 거였습니다. 졸업장 이외에 제게 남은 건 “상처뿐인 영광”도 아니고 “영광 없는 상처”도 아닌 애매한 좌절과 낭패감이었습니다.
그때도 어머니께서는 제가 시골집에 가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빨갛게 볶아놓고 소나무숲이 우거진 집 앞에 나와서 기다려주셨습니다.
가슴이 먹먹하여 음식이 막히곤 했습니다.
이제 딸아이가 대학 2학년이 되어 가끔 집에 옵니다. 아빠의 젊은 날. 실수와 좌절과 부끄러움에 대해 말하진 않습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가만히 옆에 있어줄 뿐입니다.
사후세계를 믿진 않지만, 가끔 시간이 나는 대로 부모님께 편지를 써 볼 생각입니다.
제가 20세기 동안 저질렀던 일들에 대해,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을 부모님께 속죄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먼저 가다듬어 부모님 뜻대로 살고 있는지 가늠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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