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생마사(牛生馬死)와 학여역수(學如逆水) |
정관성
제19회 아시안게임이 한창입니다. 축구 경기에 나오는 이강인 선수를 보고 환호하며, 우리나라 선수끼리 결승전을 하는 광경도 보게 됩니다. 눈이 호강하고 있죠. 딱히 보고 싶던 프로그램도 없던 차에 각본 없는 실전을 관전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스포츠가 국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사이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운동선수 부모님, 방송국 사장, 열심히 운동하고 TV에 나오게 된 선수들 등 여러 사람을 댑니다. 그분들 모두 제철을 만나 마음껏 응원하고 국민들의 응원을 받으니 가장 좋아할 사람들이 맞습니다. 스포츠와는 직간접 인연이 별로 없지만, 분위기를 가장 즐기는 사람들은 정치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질구질한 정치 이야기로 언성을 높이고 성정을 괴롭게 하느니 스포츠로 울고 웃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것이죠. 정치인들의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갸륵합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을 피하고자 하는 꼼수도 느껴집니다.
일찍이 80년대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시작된 것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3S정책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3S란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를 일컫습니다.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보다 눈, 귀, 몸으로 즐기며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부터 멀어지길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죠. 실제로 3S정책은 내밀하게 진행되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지역정치로 재미를 보던 사람들은 프로야구 연고팀을 통해 지역감정과 지역색을 활용하기에 바빴고, 젊은 세대는 스크린에 몰입했으며, 일본과 미국의 섹스산업은 우리나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거대한 소비와 향락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언제 전쟁통이었고, 언제 보릿고개였나 싶을 정도로 과거를 묻고 미래에 대해 묻지 않고 현실의 기쁨을 누리는 문화가 거세게 몰려왔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광주학살의 원흉과 같은 하늘아래 살기 싫다며 투신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더 이상 빼앗기는 삶을 거부한다던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이들의 외침은 불순한 자들의 반사회적 행동으로 몰아갔습니다.
2023년, 오늘. 경기는 좋지 않지만, 여전히 스포츠는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여념이 없고,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뭐가 맛있다며 먹으러 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영화관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네플릭스 인기 드라마 정주행은 대세라고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국가대표 축구와 야구에 관심이 쏠려 생중계라도 하면 기다려지는 자로 길들여진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정녕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환경을 크게 벗어날 수 없을까요?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센 물살에 소와 말이 같이 빠지면, 소는 떠내려가며 물살에 몸을 맡겼다가 살고 말은 거스르며 헤쳐 나오다가 죽는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대세에 몸을 맡기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자기의 역량을 잘 깨우쳐 처세를 바로 하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말로도 해석됩니다. 말처럼 기운대로 물살과 싸우다가 무참하게 죽고 말면 아무 소용없지 않겠느냐며 타이를 때도 쓰입니다. 대체로 젊은이들에게 연륜이 있는 분들이 타이르는 말이며, 살아보니 이렇다거나 라떼는 어땠다거나 할 때 예로 들기도 합니다.
“학여역수(學如逆水)”라는 말도 있습니다. 배움은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 또한 젊은이들에게 일러주는 말이죠. 어떤 문제를 직면하면 그 문제의 이유와 본질을 따지기 위해 더 근원에 가깝게 가려는 탐구정신이 있어야 학문의 발전이 있다고 합니다. 물살에 떠밀려 가는 물고기는 죽은 것과 같고, 아무리 작아도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는 교훈도 적용됩니다. 세상을 알아가고, 사회적 이슈에 접근하는 자세도 궁금증과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우생마사”와 “학여역수” 중간 어디쯤에 서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대세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다가 기회를 잡고자 하며,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본질을 따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항상 그래왔지만. “오늘”의 우리는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정치는 양극단으로 달리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세대 간 단절이 심각하고, 경제 환경도 극과 극을 오갑니다. 특히, 기후 변화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상을 뒤엎곤 합니다. 이쯤 되면 잿빛 디스토피아가 눈앞에 펼쳐질 거 같아 우울해집니다. 세상, 정치, 기후 등 넓은 범위가 아닌 가정, 직장, 친구 등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봐도 우리는 대세에 종종 따르고, 가끔은 꼬치꼬치 따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동선수들의 화려한 메달 뒤의 과정을 보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경기에 나간 선수 중 메달을 따고 시상대에 오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상위 등수에 들지 못했다고 해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운동선수에 대한 모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땀과 피와 눈물이 있었고, 비록 경기에서 이기지 못했어도 그들은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위정자들의 관심 돌리기 술책과 달리 우리가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고요. 선수들은 최종의 결과에 대해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곤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감동하고, 정서가 정화되는 경험을 합니다.
과정은 “학여역수”였을 것입니다. 결과를 수용하고 다음으로 가는 길은 소처럼 우직할 것입니다.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소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순응하는 무기력한 소는 아닙니다. 물살 아래의 발은 디딜 땅을 탐색하고, 체력을 안배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다음 기회를 또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과정과 결과에 성실성과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입니다. 거꾸로 과정을 물살에 휩쓸리는 소처럼 하고, 결과를 물살을 거스르듯 하는 사람들도 종종 봅니다. 누군가의 말을 얼치기로 주워듣고 자기 확신에 차서 떠드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은 “가짜뉴스”라고 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나 악당으로 치부하기 일쑤입니다. 자기들에게 편한 사람들끼리 자기들 편을 공고히 하는 일을 “공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3S로 편을 가르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던 사람과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스포츠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던 시절의 회한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우리는 스포츠정신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땀과 피와 눈물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정신입니다. 선수들을 응원하다 밤이 늦어서야 이 글을 쓰게 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