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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민족주의의 극복 |
백승종(역사학자)
사진은 오늘 현재(2024년 8월 8일) 국가별 메달 집계입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에 실린 것입니다. 표를 보면, 한국(Suedkorea)은 6위로 올라있고, 독일은 10위입니다. 아마 40년쯤 전에는 이런 집계표가 어느 나라에서든 신문의 제1면을 장식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만 해도 그 변화를 읽을 수 있어요. 메달 집계는 그 신문의 제1면이 아니라, 스포츠 면에만 보입니다. 그것도 올림픽에 관한 특집 기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든지 스포츠는 선수 개인의 성취를 넘어 국가의 위상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력은 체력"이라는 식의 군사적인 구호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메달만 많이 따면 강대국이란 인식도 시들해졌는데요, 저는 그런 변화를 다행으로 여깁니다.
우리의 대한체육회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짐작하건대 그의 사고 방식은 아직도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메달을 하나라도 많이 따게 하려고, 금년 초에 대한체육회장이 모든 종목의 대표선수를 한꺼번에 소집해 해병대식으로 지옥훈련을 시켰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마침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대표선수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메달을 획득하자 체육회장은 해병대식 훈련이 효과를 냈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도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보아도 폭력적이기만 한 '해병대식 정신교육'인데, 도대체 무슨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대한체육회장의 낡은 사고방식이 제게는 너무 낯선 풍경입니다. 생각컨대 배드민턴 같은 일부 종목은 대표 선수를 대하는 협회 간부들의 횡포가 과도한 것 같습니다. 엊그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대회 직후에 쏟아낸 피맺힌 절규가 아직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도대체 한 인간이 성장하여 국가대표선수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요.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묻건대 대표선수란 조국의 영예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전투요원과 똑같은 것인지요.
자랑스러운 대표선수를 우리나라에서는 '태극전사'라고 부릅니다만,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표현인가요. 선수는 우수한 선수일 뿐 전사와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가 전사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올림픽은 청년들의 스포츠 교류이지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아남는 싸움터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메달을 많이 따면 국위가 선양된다는 식의 낡아빠진 '스포츠 민족주의'는 청산해야 할 대상입니다. 한 개의 금메달은 100개의 은메달보다 낫다는 식의 평가도 폐기처분하는 것이 옳습니다.
금, 은, 동메달은 어느 것이나 최상의 가치를 가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올림픽처럼 문턱이 대단히 높은 대회라면 시합에 나갈 자격을 얻은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예입니다. 다음 대회부터는 나라 별로 매달을 집계하는 식의 경기 운영도 그만두기를 촉구합니다. 승자는 승자여서 좋지만, 단 한 번도 승리를 하지 못한다 해도 올림픽처럼 성대한 젊음의 축전에 참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도 어마어마한 영예가 아닐까요.
재벌이 되고, 권력자가 되고, 노벨상을 받은 학자가 되는 것도 좋으나, 신산(辛酸)을 견디며 깨끗하고 성실하게 한 평생을 보냈다면 그 삶은 비할 수 없이 위대한 것이지요. 운동 선수의 삶이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다를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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