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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97)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임실 이웅재고가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2길 55번지에 있습니다.
'전라도 인물의 반은 남원에 나고, 남원 인물의 반은 둔덕에서 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둔덕리는 행정구역상 임실오수이나 남원사매면과 인접해 있고 조선시대에는 남원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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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재 고가는 이담손이 조선 연산군 6년(1500)경에 지은 것을 여러 차례 보수한 건물입니다.
이담손은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의 증손이며, 전주이씨로서는 둔덕리에 맨 처음 들어온 사람입니다. 경사면을 축대로 쌓은 장방형의 대지에 자리한 이 집은 동남쪽을 향하여 안채, 사랑채, 대문채가 위치하고 있는 ㄷ자형의 가옥이다. 사랑채는 일자 형으로 고종 1년(1864)에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문에는 고종 7년(1870)에 이문주에게 내린 효자정문의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대문도 이때 지은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이 지방 사대부들의 주거생활의 이면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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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집은 1500년대에 춘성정(春城正) 이담손(李聃孫)이 마을에 입향하여 지은 것이라고 전하나 안대청 상량 기록으로 보아 1909년에 전체적인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채ㆍ사랑채ㆍ안행랑채ㆍ대문채ㆍ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몸채에 동서 양측으로 날개를 달아 ㄷ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몸채는 각각 2칸의 안방과 대청이 이어지며 대청 동측에 건넌방 대신에 도장을 설치하였습니다.
도장 남측에는 머리방과 작은 부엌이 있어 동쪽 날개가 됩니다. 서쪽날개부에는 부엌과 샛방 사이에 마루방을 따로 두고 샛방 전면 상부는 공루를 구성하였습니다. 안채 전면에는 ㄴ자형 안행랑채가 날개를 벌려 안채를 감싸고 있습니다.
안행랑채는 방아실, 안변소, 광, 책방으로 구성되었으나 근래에 외양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본래는 초가였으며 책방은 이전에 가빈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안채와 안행랑채가 엇비스듬히 만나는 곳에 중문이 있습니다. 이 중문을 나서면 사당을 바라보며 사랑채 뒤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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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대 위에 서 있는 사랑채는 맞배지붕의 一자집입니다. 각각 2칸의 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으며, 상량문에 의하면 1864년에 세워졌습니다. 대문채는 5칸이며 중앙부에 솟을대문을 두었습니다. 여기에 이문주(李們胄)의 효자 정문(旌門)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밖의 좌우 양쪽에는 하마석(下馬石)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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